대상 이동규 당선소감

당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기쁨을 배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둘째였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얼마나 오랫동안 방안을 서성였던가. 혹여나 가작이나마 수상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도, 그같은 터럭만큼의 기대조차 이내 부끄러워져 혼자 피식 웃고 말던 나였기에 그 떨림은 더욱 심했다. 나 스스로의 필요와 재미 때문에 시작했던 나만의 언어가 저 혼자 훌쩍 커버린 느낌이랄까. 곱게도 야무지게도 자라지 못하여 행여나 본 수상이 역대의 그것들에 한참이나 모자란 것은 아닐지 우려가 앞선다.


가슴 속 요동이 잠잠해질 즈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우리’과, 즉 국어교육과라는 하나의 추상(抽象)이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시(詩)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내가 미흡한 실력에 우연과 時期(시기)의 덕으로 부끄럽게나마 이 자리까지 차지했으니, 내 시작(詩作)의 물꼬가 되어준 ‘우리’과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불화(不和)지만 한때는 더없는 융화였던 그때 그 사람들, 내 시작의 동기(動機)가 되어준 일련의 사건들, ‘우리들’의 간격을 채워준 허공 속 숱한 언어들, 그리고 내 시의 8할을 키워준 감성형 인간 덕범이 형, 이제와 돌이켜보니 모두 고마울 뿐이다. 덕분에 감성을 배웠고, 서정(抒情)을 배웠다. 대학시절 누구나 가질 법한 추억 하나쯤 갖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과분한 선물을 받고 가는 기분이다.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그 순간이 이전까지의 나의 삶과 이제부터의 내 삶 사이의 무형의 경계선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일견 설레고, 일견 두렵다. 일희(一喜)이자 일비(一悲)다. 기로에 선 자의 몫이란 게 이런 걸까.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나의 언어를 곱고 야무지게 키우는 일일 것이리라. 당선 소식을 듣던 날, 오후 무렵 먹구름 사이로 거침없이 휘날리던 가을 끝, 겨울 문턱의 소나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시답잖던 나의 생에 시를 들여 보내준 사람, 사람들에게 감사 또 감사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나의 환상과 힘껏 부딪칠 수 있도록 늘 곁에서 격려해준 사람, 사람들도. 마지막으로 예상치 못했던 길을 쥐어주신 심사위원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면서,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흥분의 사(辭)를 이제 그만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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