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어느날 수업이 끝난 후 벌어진 술자리에서 한 학생이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곰팡이 선생님이에요. 깔깔깔∼"
언젠가 문학사 시간에 페미니즘 소설을 읽고 토론하다 결혼 후 포악해져(?) 갈 수밖에 없었던 나의 비애를 토로한 이야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결혼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한 후 나는 보살핌을 받고 싶어하는 남편과, 그리고 스스로 내면화되어 있는 여자의 의무감과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것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가사 일이다. 난 밥과 빨래 남편은 설거지와 청소, 이렇게 가사 일을 분담해서 하기로 했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나면 쉬고 싶은 마음에 "나중에 할게", "내일 할게"가 반복되기 일쑤였다. 밥이야 다음 날 먹겠다고 할 수 없으니 당장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결혼한 여자들끼리 모여 떠들다 보니 다들 같은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 대부분의 여성들은 '지저분한 것 보기 싫어서', '자꾸 말하기 귀찮아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차피 여자의 일이니까'라는 생각에서 결국 모든 가사 일을 여성들의 몫으로 다시 가져온다. 하지만 포악해지기로 했던 나는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릇이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고 노래만 부르면서 아예 밥을 하지 않았다. 물론 설거지도. 그러다 결국 좁고 습기 찬 부엌에서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일주일 이상 쌓여 있던 그릇 밑바닥에 울긋불긋한 솜사탕 같은 곰팡이가 피어나기에 이른 것이다.

다들 어떻게 그러고도 잠이 오냐고도 하고, 참 지독하다고도 한다. 여성 지식인을 포함한 사회 생활을 하는 한국의 모든 여성들이 넘어야 할 문제는 가사 노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에 순간의 상쾌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다고 하면 정말 인정머리 없는 사람일까?

하지만 가사 일은 결코 젠더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먼저 잠재된 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안이 더러울 때,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식사시간에 집에서 밥을 차릴 수 없을 때 무조건 미안한 마음부터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 모든 것이 여성들만의 일은 아니니까.

여성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던 억압에서 벗어났다면 이제 자기욕망을 요구하자. 불합리한 상황에 어설프게 타협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지만, 박사 과정에 진학을 한 후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한 남편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아무런 문제를 못 느끼는데 다른 회사 동료들이 여자가 가방 끈이 길면 좋을 게 없으니 어떻게든 학교를 그만두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학교 다니지 말고 그냥 공부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회사를 그만두든지, 나와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완벽히 무시하든지 셋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과격한 언행이었는지는 몰라도 타협해서는 안 되는 문제는 애초에 거론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여라

여성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요구는 지나치게 타자화되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내면화시킨 여성의 죄의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사장시키지는 말자.

나는 '수퍼우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가사 일과 사회 역할을 무조건 다 잘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 말 속에는 여전히 가사 일은 여성들만의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수퍼우먼이 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혼자만 수퍼우먼으로 있으면 외로우니까 남성들도 수퍼맨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성들이여, 남성들이 수퍼맨이 될 기회를 박탈하지 말지니!'

김순진
한국외대 강사·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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