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부문 가작 -한석현 원자핵공학과 99

0. 들어가며
이순신 동상 위로 헬기가 날아간다. 저 멀리 청와대, 중앙청, 광화문이 보인다. 헬기는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대통령 일행을 태우고 청와대로 향하는 길이다. 멀어져 가는 헬기 아래로 위엄 있는 모습의 이순신 동상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프레임 안에 가득 찬 군사 정권의 기념물은 “각하가 곧 국갚였던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며, 현 시대의 집단적 기억을 대변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70년대의 풍경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압축적으로 포착하는 이 짧은 쇼트는 그 시대를 회고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시선을 드러낸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모든 영화는 일종의 부재의 현존이다.1)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창출하며 세계를 보는 해석판을 제공한다. 따라서 영화적 재현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세계에 대한 ‘환영’을 포함한다. 영화가 재현하는 대상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현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대상을 원래 이미지대로 지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지각은 ‘무엇으로서 봄 seeing as’의 과정이다. 영화지각의 과정에서 우리는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며 비존재의 대상에 존재를 부여한다. 이렇게 해서 영화적 재현은 강력한 현존을 획득하며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환영효과를 발휘한다.
과거의 기억을 재현하는 역사영화의 경우 영화적 재현이 갖는 환영효과는 극대화된다. 역사영화는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실존 인물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허구적 요소를 첨가하여 죽은 과거를 복원한다. 역사영화가 포착하는 재현 대상의 ‘위대함’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2)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며, 그러한 목적으로 지배세력에 의해 구성된 기억이 공식기억의 자리를 차지한다.3) 공식기억을 조직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 영화는 최고의 매체로 각광받는다. 부재를 현존화하는 영화 재현의 환영효과를 통해 공식기억은 집단적 기억이라는 사회적 구성물로 자리매김된다.4)
일례로 70년대 말엽까지 정부의 지원 아래 제작된 수많은 반공영화는 전쟁기념관이나 국립현충원 같은 공간과 더불어 공식기억의 집단적 기억화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반면에 2000년대 이후로 복고가 유행하면서 제작된 과거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은 공식기억의 집단적 기억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문화산업의 이익창출 도구로 활용되며, 이로 인해 이들 영화는 반동적인 정치의식과 연결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를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 두 영화는 내러티브의 표피적 차원에서 탈이데올로기적 기표로 치장되어 있지만, 보다 심층에서는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이나 가부장제에 근거한 가족의 가치를 절대화하고 신성시하는 과잉 기의로 흘러넘친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떠한 의미화도 거부한다는 점에서 과거를 다룬 여타의 영화들과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다.5) 암살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와 산업발전의 아버지로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의 딸은 최대 야당의 당수로서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2005년 한국, 지금, 이곳에서 박정희 혹은 7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그 자체로 강력히 현존한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제발 잊자고, 제발 좀 벗어나자고. 이는 부재의 현존이 아닌 현존의 부재화 전략, 다시 말해 70년대 집단적 기억이 갖는 환영효과를 해체하고 과잉된 의미를 비워내기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기억의 빈 자리에 냉소와 풍자를 새겨넣는다는 점에서 「그때 그 사람들」은 70년대 집단적 기억에 바치는 유쾌한 진혼곡이다. 영화에서 부재화의 전략은 내러티브, 구조, 시점, 공간 등 여러 층위를 통해 표현된다. 이제 ‘그때 그 사람들’이 있던 그 날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1. 인과적 내러티브의 부재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저격됐던 그 날, 단 하루 동안의 일을 다룬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인 주 과장(한석규 분)은 대통령(송재호 분)의 엽색행각을 보좌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영화에서 중정 요원들이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의 사적인 일을 처리해야 하는 처지가 못마땅하고 늘 짜증스럽다.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이 있었던 그날도 여느 때처럼 궁정동에서 연회가 벌어진다. 여흥을 북돋을 여대생(조은지 분)과 대통령에게 엔카를 불러줄 가수(김윤아 분)를 대동하고 궁정동에 도착한 주 과장은 심상찮은 낌새를 알아차린다. 김 부장(백윤식 분)은 오른팔인 주 과장과 민 대령에게 오늘이 거사를 실행할 기회임을 내비치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거사에 가담하게 된다. 김 부장은 대통령과 차 실장(정원중 분)을 살해하고 육군 참모총장과 함께 육군본부에 가서 국무회의를 주재하지만, 사건을 지켜본 비서실장의 폭로로 보안사 요원들에게 체포된다. 김 부장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주 과장은 어쩔 줄 몰라 차를 몰고 광화문 대로를 헤맨다.
사건 당일의 일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 구조는 인과율에 충실한 고전적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있다. 고전적 내러티브 영화는 일반적으로 질서-무질서-질서의 회복이라는 삼각 구조를 취한다. 외형상 조화로운 질서를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에서 영화는 시작되고 인과적으로 연결된 사건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든 내러티브 진행은 정교하게 짜여진 원인과 결과에 의존한다. 고전 내러티브 영화의 결말은 무질서가 질서의 상태를 회복하고 모든 갈등과 의문이 해소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에서 일련의 사건들은 원인과 동기를 찾기 어려우며 영화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 채로 끝을 맺는다. 김 부장은 왜 대통령을 ‘직격목표’로 설정했는지, 암살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는지, 미국의 사주를 받았는지, 주 과장과 민 대령이 암살에 가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암살 후 김 부장은 왜 남산으로 가지 않고 육군본부로 향했는지, 비서실장을 살려둔 이유는 무엇인지, 영화는 관객이 기대한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이 생략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김 부장과 차 실장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한 장면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대통령 암살사건의 전모는 권력에서 소외된 2인자의 충동적인 돌출행동에 불과하다. 일국의 대통령을 암살하고도 대책 없이 허둥거리는 음모의 가담자들은 이 사건이 결코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과거의 기억을 조직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가들에게 현대사의 전환을 야기한 중대한 사건이 우연한 계기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그것이야말로 진실임을 말하고 있다. 한국 근대화의 신화가 하룻밤의 소동으로 무너져 내린 역사의 아이러니. 인과적 내러티브의 부재와 하나의 목적을 향해 흐르지 않고 단편적인 해프닝의 연속으로 구성된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각인된 집단적 기억의 취약한 구조를 드러낸다. 사건의 배후를 상상하며 그럴 듯한 역사적 해석을 기대한 관객들은 뜻밖의 허술한 이야기에 동요한다. “대통령 암살이라는 유신체제의 종식을 가져온 사건에 대한 인식의 장을 탈중심화했다”6)는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평가는,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 강력한 현존으로 작용하는 70년대 집단적 기억의 의미를 비워내는 「그때 그 사람들」의 전략이 내러티브적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뜻한다.

2. 성찰적 순간을 제공하는
치밀한 대칭구조
「그때 그 사람들」의 약화된 인과적 내러티브는 치밀하게 구성된 대칭구조에 의해 보충된다. 영화는 내러티브 진행 순으로 총 여섯 번의 성찰적 순간을 제공하는데 이는 〔그림1〕에서 보듯 암살을 전후로 각각 쌍을 이루는 수미상응식 구조를 취한다.
첫 번째 성찰적 순간은 영화의 앞뒤로 삽입된 기록필름 장면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암시하는 유일한 장면인 이 부분은 사법부의 지혜로운(?) 판결로 잘려나간 채 상영되었으니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도입은 부마항쟁 당시의 기록필름 영상과 김윤아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7) 이 장면은 박 정권 말기의 대표적 사건을 통해 70년대 사회 분위기를 제시하며 내레이션의 한 어구처럼 ‘뜬금없게도’ 연희동 모처에서 젖가슴을 다 드러낸 여인들이 수영장을 활보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갑작스런 장면전환을 통해 관객은 공식적 기억을 넘어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권력의 밀실, 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화는 ‘공식적 기억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엔딩 크레딧의 배경화면인 박정희 장례식 장면은 도입부의 기록필름과 호응한다. 독재자의 죽음을 한바탕 소동으로 묘사한 영화의 마지막은 관 속에 담긴 시신, 독재자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장식된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는 박근혜의 앳된 모습은 박정희의 그림자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다음은 중앙정보부의 고문실을 느릿한 트랙킹 쇼트로 관조하는 장면이다. 주 과장은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치 박물관의 전시품을 관람하듯이 고문실 안을 들여다본다. 카메라는 디제시스 공간의 밖에서 전경에 배치된 고문실 안의 풍경과 프레임 후면에서 고문실을 들여다보는 주 과장의 모습을 건조하게 비춘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어처구니 없는 조사가 행해지는 고문실은 그 자체로 비이성적 광기가 지배하던 군사독재 시절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암살의 가담자들이 처한 상황을 윤여정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결말부 장면은 중정 고문실 트랙킹 쇼트와 기이한 상관관계로 얽혀있다. 암살의 가담자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란에 휩쓸려 죽음을 당한다. 과연 이들은 역사의 희생자인가. 아니 오히려 그들은 중정의 고문실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던 자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 권력의 주변부에서 기생하던 인간들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이들의 몰락은 필연적인 응징의 과정이다. 자신의 딸을 대통령에게 상납하기 위해 애쓰는 파렴치한 인간(윤여정), 그로 인해 중정 고문실에서 곤욕을 치룬 이 여인에게 “철딱서니 없는 사내들”이라며 그들을 비웃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은 군사독재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동조한 자들에 대한 지독한 야유다.
세 번째 성찰의 순간은 암살 직전에 궁정동 안의 일상적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트를 넘나드는 카메라의 시선은 경호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궁정동 내부와 식당의 풍경을 엿본다. 이는 암살 후 피 흘린 채 죽어있는 경호원들의 시신을 특권적 높이에서 부감 쇼트로 관조하는 장면과 완벽히 호응하면서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인다.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시신을 내려다볼 때,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으며 노닥거리던 이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영화는 관객에게 말을 건다. 권력의 밀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불가해한 그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이들은 희생자인가를,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3. 관찰자적 시점-시대로부터 거리두기
앞 절에서 언급한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관찰자적인 시점을 취하고 있다. 중정 고문실 트랙킹쇼트와 궁정동 내부 부감쇼트에서 카메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주 과장의 시점쇼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디제시스 공간 밖에서 세트임을 굳이 감추지 않고 주 과장의 모습을 함께 담는다. 궁정동 내부 트랙킹쇼트에서도 카메라는 세트를 넘어서서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김 부장이 거사를 실행하는 장면에서도 그의 행동을 관찰하는 시점을 취한다. 카메라는 하이앵글로 김 부장이 연회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을 비춘다. 이어서 각도를 낮춰 이를 악무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김 부장의 동선에 앞서 연회장으로 선회한다. 그는 카메라의 뒤를 쫓아 권총을 감추고 들어오고, 이어 그의 뒷모습이 프레임 전체를 차지한다.
한편 대화 장면에서 흔히 취하는 쇼트/액앵글 쇼트는 일반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시점을 취하지만, 김 부장과 차 실장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화 장면에서는 청자의 시점을 벗어나 있다. 이는 관객이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을 방해하며 내러티브 공간에서 관객이 상상적인 자아를 구성할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카메라의 시점과 마찬가지로 영화 전체의 화자(내러티브 차원의 화자)는 중심인물의 입장에 서서 관객이 다른 인물을 바라보게 하는 내적 초점화가 아닌 무초점화(배후의 시야)의 방식을 취한다.8) 이는 어떤 주관도 배제하고 대상을 제3자의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영화의 내러티브로부터 관객이 거리를 두도록 한다.
관찰자적 시점은 관객이 시대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한편, 일종의 공범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이중적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궁정동 심 집사는 당시 소시민의 표상으로서 군사독재가 대중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9) 모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심 집사는 화자가 취하는 관찰자적 시점, 즉 배후의 시야를 영화 속에서 실현하는 대리적 화자로 볼 수 있다. 심 집사는 주 과장에게 참모총장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몇 가지 특정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는 중요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내러티브의 전개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심 집사는 일련의 사건을 모두 지켜보지만 개입하지 않고 그저 관망하고만 있다. 김 부장이 권총을 들고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을 굳게 닫고,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워 문다. 윤여정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장면에서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밥을 먹는다.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도 그렇다고 저항하지도 않는 그의 모습은 억압과 폭력 아래서 그저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애써왔던 대다수 소시민들의 모습은 아닐런지.

4. 모호한 디제시스 공간 -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 허물기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하는 영화를 리얼리즘 영화라고 할 때, 「그때 그 사람들」은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70년대를 다룬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복고풍의 의상이나 박정희 사진과 같은 미술적인 클리셰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굳이 사실적인 미장센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현존을 부재화하고 역사적 재현의 의미를 무력화시키는 영화의 전략과 맞아 떨어진다. 그 점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허물어진 경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표1〕에서처럼 영화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은 제한적이며 그나마도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모습으로 비춰진다. 청와대 집무실은 높은 천장과 넓은 내부공간으로 수직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로우 앵글로 포착된 집무실의 위압적인 공간감은 박정희의 절대 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집무실 한 쪽에는 뒷골목 전당포에나 있을 법한 금고가 마련돼 있고, 대통령은 금고에 보관된 돈을 사사로이 사용한다. 또한 국기 게양식이 거행되는 널따란 연병장에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는 병사들은 국가권력의 권위를 상징하지만, 애국가를 중지시키고 “각하가 곧 국갚라고 일장 연설하는 경호실장의 모습에서 국가의 권위는 오히려 희화화된다. 이처럼 독재 권력을 상징하는 공적 공간이 뒤틀린 모습으로 제시됨으로써 독재 권력의 부당성이 폭로되고 국가는 위엄을 상실한다.
영화에서 사적 영역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드러나며 그마저도 비정상적이긴 마찬가지다. 이는 독재권력이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구속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율적인 사적 영역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길거리에서 학생들은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버스에 타지 못하고 멈춰서야 하며, 집에서 쉬고 있던 중정요원은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중정)’의 부름에 즉시 달려나갈 수밖에 없다. 국가 권력은 국민의 신체를 규율화하며 자유를 속박한다. 사적 영역은 온전한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늘 침해받는다.
영화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영역인 궁정동에 대부분을 할애한다. 궁정동과 중정 고문실 등은 공식적인 공적 영역이라고 볼 수 없으며 사적 영역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비밀스런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궁정동은 블랙 톤의 색감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내부는 좁고 미로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또한 중정 고문실은 회색 톤의 밀실과도 같은 곳이다. 그렇지만 실제적인 국가 권력은 바로 이러한 밀실로부터 나온다. 차 실장의 말처럼 “붙잡아서 때리고 겁줘서 아가리 닥치게 하는” 중정의 고문실에서 반대자들의 목소리는 새어나올 수 없으며, 궁정동 연회장에서 권력자들은 여자를 끼고 앉아 술판을 벌이며 국가운영을 논한다. 이처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허물어진 경계는 군사정권의 비정상적인 권력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5. 캐릭터 분석 - 부재의 자리를 대신하는 냉소와 풍자의 어법
「그때 그 사람들」의 주조를 이루는 정서는 냉소와 풍자다. 10?26 당시의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의 기본 동선은 사실에 근거하지만, 구체적인 대사와 상황은 연출자의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황색 저널리즘 매체나 어느 중정부장의 회고록에서 보았음직한 온갖 잡다한 야사와 비화, 에피소드가 권력자들의 대사와 상황 속에 버무려져 있다. 냉소와 풍자의 어법은 권력자의 이중성과 모순을 향해 있기도 하지만, 권력 자체의 취약함, 그리고 영화가 주목하고자 한 주변인들까지도 대상으로 삼는다.
아직까지도 구지배세력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박정희,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는 영화 속에서 작고 외로움에 지친 할아버지로 표현된다. ‘할아버지’는 참모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 일본어를 사용하고, “배꼽 아래 일은 문제 삼는 게 아니다”라며 한 측근의 여자 문제를 두고 시시덕거린다. 또한 술자리에서는 야당만 있으면 민주주의라는 엉터리 논리로 미국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를 높이고,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라는 나름의 정치적 소신을 밝힌다. 여대생의 무릎을 베고 누워 엔카를 즐기는 모습은 김 부장의 말대로 “참 가관이다”. 1965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시킨 것은 박정희가 아니었던가.10) 여대생이 팔을 휘저으며 부르는 노래는 다름 아닌 1971년 가사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아닌가. 간이 안 좋아 늘 입냄새를 풍겨 각하에게 죄송스럽다던 김 부장은 할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이렇게 말한다. “다까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이름), 누구라도 죽으면 그냥 썩은 내 피우는 쓰레기인 거요.” 이러한 장치는 권력자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일종의 농담이며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의 이미지를 탈신화화한다.
권력의 2인자들도 냉소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상반신만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러 달려가는 경호실장의 뒷모습을 보여 줄 때, 아랫도리를 입지 않은 하반신이 갑자기 드러나며 그는 속옷차림으로 엉덩이에 힘을 주고 차려 자세를 취한다. 비서실장은 술상무라는 모욕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김 부장이 총을 쏘는 순간에는 상 아래로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김 부장의 주치의는 사무라이 정신 운운하는 김 부장을 “사무라이 좋아하시네”라며 조롱한다.
권력 구조 자체의 취약함과 허실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교묘하다. 육군본부 정문에서 보초병은 참모총장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2급 비상사태임에도 육군본부에서는 실탄조차 구할 수 없다. 국무회의에서 우왕좌왕하는 국무위원들의 얼굴은 핸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더욱 어지럽게 흔들린다. 시체를 지키던 중정요원들이 대통령의 시신 앞에 늘어선 국무위원들을 라면을 먹으면서 바라보는 장면은 권력구조의 취약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국무위원들은 죽은 시체 앞에서 묵념하며, 그 중 한 명은 모자로 대통령의 성기를 가리는 센스를 발휘한다. 아주 짧은 묵념을 끝내고는 즉석에서 총리를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박수를 친다. 이들의 희화화되고 무기력한 모습은 민주투사를 자처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에 의해 어떻게 국가권력이 무너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일개 장군에 불과한 보안사령관이 권력을 탈취하고 제2의 군사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11)
영화는 10?26에 휘말려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됐던 주변인들, ‘그때 그 사람들’에 주목하려고 했다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궁정동 경비원들은 당구를 치면서 보안사 요원들의 간첩만들기 수법을 읊어대고, 겁에 질린 한 요원은 시키는 대로 시체에 총질을 한다. 어머니는 자기 딸을 대통령에게 바치기 위해 노력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도 보일러 기사는 보일러실에 숨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내레이션을 통해 ‘그때 그 사람들’의 최후를 냉소적으로 돌아보지만, 그들을 꾸짖는 목소리 역시도 부도덕한 어머니가 아니던가.
주 과장은 ‘그때 그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는 매우 복합적인 캐릭터로서 그가 보여주는 행위와 언행은 매우 모순적이다. 그는 대통령의 엽색행각을 뒤처리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우며, 딸자식을 팔아먹으려는 어머니의 부도덕함을 못마땅해할 정도로 상식적인 인간이다. 또한 부하가 “같은 국가공무원끼리 왜 그러십니까”라고 말하자 코웃음을 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국가 권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김 부장의 갑작스런 계획에 동참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쇼부치고’, 다급히 행동하는 김 부장을 보면서 우리가 무슨 죄졌냐며 자신의 행동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자 어찌할 바를 몰라 광화문 대로를 배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할 만큼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주 과장의 복합적인 캐릭터는 비이성과 광기가 지배하던 70년대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주 과장 역시 그러한 시대를 배태하는데 동조한 공범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살리고 싶어 했던 친구의 피를 뒤집어써야만 했던 것은 당연히 그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영화 속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술자리에 불려가는 두 여인뿐이다. 어느 대학이냐고 묻는 주 과장에게 ‘그냥 청강생’이라고 말하는 여대생은 70년대스럽지 않게 스스로를 ‘쿨한 년’이라고 부르며, 할아버지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스스럼없이 행동한다. 가수 또한 무기력한 차 실장, 비서실장과 달리 할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김 부장에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만큼 능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대통령의 잠자리상대와 가수에 불과하지만, 권력의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우며 권력자(남성)들을 ‘머리 나쁜놈들’로 치부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6. 나가며
영화가 과연 현실을 올바로 재현하는가, 혹은 하나의 환상일 뿐인가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허나 현실의 반영 여부를 떠나 영화적 재현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하다. 영화가 재현하는 세계는 관객들에게 세계를 인식하는 틀을 제공하고 특정한 행동과 사고과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재구성된 10?26이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애초에 「그때 그 사람들」은 진실을 밝히거나 역사적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의 동일화를 유도하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기 때문이다. 죽은 과거를 되살림으로써 과거를 현재화하고 집단적 기억을 되새기는 역사 영화의 전형을 생각할 때, 의문투성이의 내러티브로 진행되는 「그때 그 사람들」은 차라리 미스터리 심리물에 가깝다.
영화는 인과적 내러티브의 의미화 작용을 거부하고 집단적 기억의 흔적을 지우며 박정희의 이미지마저도 해체한다. 끊임없이 의미화 작용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은 인과적 내러티브의 부재, 무초점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 허물기 등의 영화적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70년대 집단적 기억이라는 현존이 부재화한 공간, 기의의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냉소와 풍자로 가득 찬 파편화된 70년대의 기표들이다. 그런 점에서 「그때 그 사람들」은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알레고리적 재현의 집합체다.12) 현존의 부재화 전략을 통한 재현은 관객의 동일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집단적 기억을 해체하는 전복적 기능으로 작용한다.13)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어떤 영화도 성취하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이며 과거를 조직하고 의미를 위계화하는 근대적 역사관을 뛰어넘는다.14)
시대에 대한 지독한 야유는 70년대 집단적 기억에 바치는 유쾌한 진혼곡이며, 「그때 그 사람들」이 전하는 이제는 제발 잊자는 망각의 메시지는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럼에도 냉소와 풍자가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냉소와 풍자가 ‘미래를 향한 새로운 힘’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허한 말장난에 머무를 때 극단적인 정치적 허무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1) “만약 모든 영화가 일종의 부재의 현존이라고 한다면, … 부재의 지시대상이 비존재로 간주된다면 우리는 이미지의 특수성에 주목하게 되고 반드시 미지의 것에 존재를 부여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더들리 앤드루, 『영화 이론의 개념들』, 시각과 언어, 1996, p.72.
2) “역사영화는…특히 어떤 순간이나 사람의 ‘위대함’을 포착하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진정성’은 다른 목적에 봉사한다. 이 점에서 역사 영화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수잔 헤이워드, 『영화사전』, 한나래, 1997, p.233.
3) “지배자는 과거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현재를 지배한다. 시간은 통치자의 독점물인 것이다.” 김용희, 「역사 기억을 영화화하는 몇 가지 방식」, 『문학과 영상』 2004 봄겳㈇㎹? p.57.
4) “집합적 기억으로 변화되지 않은 공식기억은 전문가의 담론에 불과하다. 공식기억은 할바흐(Halwachs)가 집합적 기억이라 명명한 사회적 구성물로 변화할 때 비로소 힘을 지닌다.” 노명우, 「새로운 기억관리 방식: 기억산업의 징후」, 『문화과학』 40호, p.154.
5)“「살인의 추억」은 자기풍자를 통해, 「지구를 지켜라」는 비극적 냉소를 통해 근대 역사관을 넘어서 탈역사적 책략을 추구한다.” 김용희, 앞의 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그때 그 사람들」은 두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6) 김영진, 「인과적 사슬을 회피하는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에 대하여」, 『계간 영화언어』 2005 여름호, p.21.
7) 내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 그가 군사쿠데타 이후 18년째 정권을 유지해오던, 1979년 가을, 부산과 마산에는 학생과 시민들의 뜻밖에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폭압적인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이를 간단히 진압해버렸습니다. 질식할 것만 같은 거짓 평온이 흐르고, 시민들은 한껏 웅크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게도, 박정희는 총에 맞았습니다.” 『씨네21』 489호.
8) “무초점화(배후의 시야)는 어떤 인물의 내면에 자리를 잡는 대신 그 인물에서 뒤로 비켜 서 있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외부에서 그 인물의 몸짓을 바라보거나 말을 들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의 심리적 삶을 객관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려는 목적을 갖는다.” 서정남, 『영화서사학』, 생각의 나무, 2004, p.304
9) 임지현은 민중이 독재의 희생자이며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투쟁해 왔다는 신화를 비판하며, 그들이 독재정권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공범자였다는, 독재권력은 민중들의 일정한 합의를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는 ‘합의 독재’ 개념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우리 사회 저변에 깊이 뿌리 내린 일상적 파시즘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임지현 외 지음, 『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 2000.
10) “‘동백아가씨’는 당시 최고의 히트곡으로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크게 넓힌 노래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이 노래를 1965년 말에 완전히 금지해서 음반제작이나 방송은 물론이고 공연조차 할 수 없게 했다.”-홍성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문화정캣, 『문화과학』 41호, 2005.
11) 영화의 말미 김 부장을 취조하는 장면에서 전두환의 모습이 잠시 비춰진다. 「그때 그 사람들」은 까메오를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김 부장 주치의는 임상수 감독 자신이 연기했고, 보초병 역은 홍록기와 봉태규가 맡아 풍자적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전두환 역은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창간된 『한겨레』의 임범 기자가 연기했다.
12)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그때 그 사람들」을 “후광을 지운 근대의 풍속화”라 명명한다.-『씨네21』 489호
13) 문재철은 영화적 기억의 특성을 논하며 영화가 제공하는 기억의 경험이 현실을 변형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종의 보철로 작용하는 영화 장치는 관객에게 허구적인 세계를 그럴듯하게 경험하게 해주지만, 과거를 관습적인 방식이 아닌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해줄 수 있고, 그럼으로써 미래를 향한 새로운 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재철, 「재현 테크로러지와 영화적 기억: 영화 경험의 문제를 중심으로」 『영화연구』 17호, 2001. p.93.
14) 개봉을 앞두고 박정희 일가가 제기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은 「그때 그 사람들」의 현존의 부재화 전략이 성공적임을 증명한다. 집단적 기억이라는 형태로 형성된 박정희의 아우라는 지금까지도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구지배세력 존립의 기반이기 때문에, 집단적 기억의 해체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재빠른 대처는 매우 영리한 행동이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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