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혁 서양사학과ㆍ02(*필자의 요청으로 가명을 씁니다.)

요즘 연일 터지는 성범죄 소식에 마음이 복잡하다. 정말 여성들이 살기 불안한 사회로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슬픔, 가해자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저 가해자들과 얼마나 많이 다른 남성일까 하는 고민이 늘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겨울에 잠시 인턴사원을 했다는 친구가 말하길,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소식에 한 상사가 “솔직히 저 사람은 그냥 운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남성들끼리 ‘공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고 한다. 순간 그런 ‘동정심’이 남성들 사이에 넓게 퍼져있다는 생각에 섬뜩해졌다. 그 말을 한 사람은 회식이나 접대를 위해  룸살롱, 단란주점 같은 산업형 성매매 업소에 자주 드나들 것이다.

이어 각종 통계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성산업 경제규모 연간 24조원, 성매매 여성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 강간 발생률은 공식적으로 세계 2위지만 사실상 1위로 추정, 성폭력 가해자의 80% 이상은 아는 사람……. 유명한 여성 배우의 누드사이트가 문을 열던 날 수십만명이 몰려 서버가 다운됐던 일, 수백만명이 각종 사이트와 공유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비디오 사건’도 생각난다.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은 이처럼 여성의 몸을 물신화, 대상화, 상품화하는 이미지와 관념들이 든든한 ‘토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안에 있고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전자팔찌, 화학적 거세 등의 처벌 방법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 처벌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성범죄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분위기만을 타고 일견 가혹해 보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성범죄가 극소수의 일탈적인 남성들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는 통념을 그대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성범죄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 교육방법,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남성들은 자기 안에 스며 있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씻어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글을 쓰고 집에 들어가는 늦은 밤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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