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건축학과ㆍ00

지프니(필리핀의 택시)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마켓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분주한 읍내를 지나 한적한 교외 도로를 달리고 간간이 눈에 띄는 염소나 소를 구경하다 보면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차가 한 대 겨우 들어갈 만한 골목은 열댓 명이 충분히 들어가는 긴 지프니에게는 벅차 보였다. 골목은 마치 우리네 시골길 같았고 바닥에 커피를 말리고 있는 모습은 할아버지 댁 앞 고추를 말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 길을 따라가니 점점 수풀이 우거지고 길은 좁아졌다. 매연을 잔뜩 뿜어내는 지프니 밖으로 보이던 벽돌집은 나무집으로 바뀌고 비포장길이 나타났다. 그저 열대나무만 우거져 있다는 사실만 안 채 우리는 깊숙이 들어갔다.

아마데오(Amadeo) 커피 농장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지프니에서 내려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먼저 지어놓은 시멘트 블록집들은 너무나 약해 보였다. 첫날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함께 일할 필리핀 사람들을 만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번도 온 적 없는 곳에 너무 깊이 들어와 겁이 나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간단히 현지인들과 인사한 후 우리는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너무 좋은 숙소와 푸짐한 음식 때문에, 무엇보다도 같이 일했던 현지인 에릭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필리핀에 함께 다녀온 한 친구의 말처럼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땅을 파는 것도 기술이라고 처음하는 곡괭이질과 삽질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우리는 벽돌을 만들고 바닥에 콘크리트를 치는 작업을 일일이 배워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그곳에 살고 있던 한 아이는 우리에게 영어로 편지를 써서 고맙다는 표현을 했다. 그들은 좋은 식사를 우리에게 먼저 주었고 기회가 되면 커피농장 주변을 구경시켜 주면서 커피나무에 대해 설명해 주고 사탕수수 깎아 먹는 법 등을 알려주면서 우리가 쉴 수 있게 해줬다.

나는 내가 봉사하러 왔다는 사실을 너무나 의식하고 있었다. 내가 의식할수록 같이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었고 오히려 그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필리핀 친구들은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의식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프로그램은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자들과 그 집에 살게 될 당사자들이 함께 집을 짓는 프로그램이다. 적은 돈으로 집을 짓기 때문에 자재를 구입하는 일 외에 가능한 일은 모두 손으로 한다. 우리가 방문한 커피 농장 사람들 역시 여러 사연을 지니고 그곳에 살게 된 사람들이었다.

나는 처음 출발하기 전 같이 떠날 멤버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봉사단체에서 효율적인 시스템과 재료, 형식으로 집을 짓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봉사하러 가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봉사를 다녀왔다고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필리핀에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배우고 돌아왔다. 봉사라는 것은 무작정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르침을 받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