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이라크에서 보내는 편지
기고 - 이라크에서 보내는 편지
  • 대학신문사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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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난민 모니터

요르단 국경을 통과하여 이라크로 처음 들어가던 날, 나의 눈앞에 펼쳐져 있던 이라크 땅의 쓸쓸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차량(GMC)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가로질러 도착한 국경지대.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나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황량한 사막 위에 서 있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긁힌 후세인의 벽화였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르단 사막을 지나왔던 일행들도 이라크로 들어와서는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이라크와의 첫 만남은 그랬다. 쓸쓸하고 적막하고 침울했다.


  나는 6월 13일부터 23일 동안 이라크에 있었다. '동아일보'와 '이라크난민돕기 시민네트워크'에서 실시하는 2차 의료지원 과정을 감사하기 위해 한국, 미국, 중동에서 활동하는 NGO 대표자들 및 동아일보 기자로 이뤄진 모니터링 팀이 구성됐고, 나는 그 팀에 합류해 현장에서의 사업 추진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니터링 팀은 향후 이라크에서 실시할 장기 지역개발사업(community development project)을 위한 사전 정보 수집 및 조사 활동도 병행했다.

 바그다드에 있으면 세계가 변화해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전쟁'이라는 개념으로는 현재 바그다드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커멓게 그을린 건물이나 붕괴된 건물이 간혹 보일 뿐 도시 전체가 파괴되는 근대전의 양상은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산발적인 무장 게릴라들과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기 어렵게 됐다. 전쟁의 개념이 움직여 간다. 그리고 그 변화의 길 위에 이라크전이 놓여 있는 것 같다. 후기 근대의 양상이 이라크 전쟁 속에도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양상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라크의 경우 그 상처를 한 층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미 오랫동안 지속된 경제제재로 인하여 사회적 인프라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부 격전지를 제외한다면 일반 이라크 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피해는 이번 전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동안 지속된 경제제재로 인한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식량은 비교적 제대로 보급되고 있었고 오히려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의약품과 의료 기기였다. 청진기마저 부족해 진료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니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전쟁이라는 드라마 이후 이라크인들은 이전과는 또 다른 일상생활을 천천히 일구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각종 국제 행위자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 바그다드로 엄청난 수의 NGO들이 세계 각지에서 밀려들고 있으며, 이외에도 군, UN, 기업 등의 행위자들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이들 행위자 간에 엄청난 수준의 협력관계도 형성되어 가고 있다. 각 행위자들의 그물망과 같은 협력 관계가 이라크에 평화를 정착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설지인 (외교학과ㆍ01) 지구촌대학생연합회 회장, 이라크난민 의약품 지원 모니터링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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