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됐던 한 국회의원의 ‘치매 노인’ 발언에서 보듯 여전히 일부 보수세력은 6ㆍ15선언의 의의를 부정하고 있다. 6ㆍ15선언을 중대한 전환점으로 보는 이들은 이러한 비난을 일축하기 위해서라도 6ㆍ15 합의정신에 따른 후속정책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 창간 40주년을 맞아 ‘운동성 회복’을 기치로 내건 『창작과비평』이 「6ㆍ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갯라는 제목으로 이번호 특집을 꾸렸다.

유재건 교수(부산대ㆍ사학과)는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ㆍ15시대」에서 ‘6ㆍ15시대’라는 시대인식의 의미를 살폈다. 유 교수는 “냉전의 본질은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이 아닌 미국패권 하의 자본주의체제 공고화이므로, 한반도의 통일은 그러한 패권적 지배체제에 일대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통일이 미국 중심의 개발주의 패러다임에 반대하는 대안적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통일에 수반되는 일체의 지역단위 구상을 비판하는 임지현 교수(한양대ㆍ사학과)의 탈민족주의적 시각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서동만 교수(상지대ㆍ정치학)와 전병유 연구위원(한국노동연구원)은 경제성장, 양극화 해소와 같은 사회현안들을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틀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했다. 서 교수는「6ㆍ15시대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발전구상」에서 대북 지원ㆍ투자 등 남북 화해ㆍ협력에 들어가는 비용이 안보비용을 감소시키고 남한 과잉자본의 투자처를 제공해, 오히려 복지예산을 증대시키고 경제개발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양극화와 한반도 경제」에서 전병유 연구위원은 “양극화를 극복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에 한반도 단일경제권이라는 관점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연구위원에 따르면 내수, 자영업, 영세서비스업을 위축시키는 경제의 불안정성 때문에 남한경제 양극화가 심화됐으며, 이러한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구 1억 정도의 규모를 가진 한반도 단일경제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의 두 글이 통일과 관련된 정책적 논의에 해당한다면, 김엘리 정책위원(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탈분단을 위한 남북여성들의 연대적 실천」, 현무암 조수(助手)(도쿄대대학원ㆍ정보학센터)의 「동아시아와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통일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가치들을 상기시킨다. 김 정책위원은 순수함ㆍ자연미 등으로 대표되는 북한여성상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는 시각에 내포된 가부장적 태도를 지적했다. 한편 현무암 조수는 한반도 주민만의 통일이 아닌, 재외동포들을 포함하는 자발적이고 분권적인 ‘코리안 네트워크’를 제시했다.

이번 특집에서 제기된 동아시아 지역협력체론이나 평화-복지 선순환관계론 등의 주장들은 능동적인 남북통일을 위해 정책수립과정에서 경청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경제협력을 통한 성장-복지 선순환 내지 양극화 해소를 언급할 때 남북 노동자계층의 생활상 변화는 사실상 논의에서 빠져 있는 등 논거의 미흡함이 눈에 띄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실례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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