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용기 있는 저항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자 콜럼비아대 교수(비교문학ㆍ영어영문학)였던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9월 24일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서구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해 평생 테러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진정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삶은…에드워드 사이드가 대표적 저서인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잘못된 편견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상충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식 이름인 ‘에드워드’와 아랍식 이름인 ‘사이드’는 그의 복잡한 자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이드는 1935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양친의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는 두 살 때 영어와 아랍어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했고, 산수와 음악에 뛰어난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실현하는 카이로 내 영국 초등학교의 생활은 아랍인으로서 소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문제아’로 만들었다.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이드가 팔레스타인의 정치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고모 나비하 덕분이었다. 1947년 예루살렘이 신생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면서 정치적 혼란에 빠지자 나비하는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 난민구호 활동을 헌신적으로 펼친다. 이런 고모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불행에 눈뜨게 된다.


카이로에서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사이드는 51년 미국으로 건너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이후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콜럼비아대의 석좌교수로 활동하면서 영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시에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실천가로 활동한다.


특히 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이후 팔레스타인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77년부터 91년까지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PNC)에서 헌법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통합된 하나의 국가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타적 태도를 비판하며, 2000년에 레바논 국경의 이스라엘 경비초소를 향해 돌을 던져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이드는 91년 마드리드 평화회담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지식인, 활동가와 함께한 세미나 도중 자신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투병 중이던 2001년,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을 발간해 아랍과 서구사회의 대립을 부추긴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등 여전히 지성인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주류사회에서 비주류의 권리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평생을 통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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