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원 교수 국어국문학과

새 식구가 된 신입생들의 재잘거림으로 이미 캠퍼스엔 봄기운이 가득하다. 개강 첫날, 대학국어 과목을 강의하러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이면 새내기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다소 묵직한 부담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대학에 들어와서까지 국어과목을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 이유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한 학기 강의가 무의미해질 것이 분명하다.

대학국어 시간은 읽기와 쓰기에 집중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시간에 쫓겨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어 사고의 폭을 넓히고, 반복적인 글쓰기 연습을 통해 머리 속의 생각을 잘 정리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과목인 것이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사고와 언어의 관련성을 깨닫게 되고 날마다 사용하는 말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한동안 한 국회의원의 성추행 파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성추행 못지않게 국민들을 화나게 한 것은 그의 변명, 즉 급한 나머지 둘러댄다고 둘러댄 “음식점 주인인 줄 알았다”는 말실수였다. 말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일수록 자신들의 ‘말의 힘’을 너무 믿기 때문인지 곧잘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른다. 온갖 수사법을 총동원하여 언변을 자랑하다 보면 현직 대통령을 미숙아라고 부르기도 하고, 현 정부를 날건달로 칭함으로써 ‘저질발언’이라는 비난을 자초한다. 우리가 어떤 발언에 대해 ‘저질’이라고 평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한두 단어에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문제의 말들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그 한두 단어 속에 말을 한 사람의 의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미숙아라고 부른 것은 수사학적으로 은유표현이다. 인지의미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은유는 문학이 전용하는 수사적 용법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개념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지 과정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다. 우리말에서 은유가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상황은 논쟁, 스포츠 그리고 정치로 이들은 흔히 ‘전쟁’이라는 개념 속에서 구조화된다. 그래서 ‘상대방 주장의 약점을 공격해서 나를 방어함으로써 논쟁에서 이겼다’거나 ‘이승엽의 홈런포로 인해 태극전사가 또 다시 한일전에서 승리했다’거나 ‘국회에는 지뢰밭이 널려있고 정치인들은 혈투를 치르며 여야 정상회담은 휴전 중’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말이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말이요, 글이다. 따라서 깊이 있는 성찰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사고가 깊어지고 폭넓어진 사람이 하는 말은 설득력이 있는 반면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값진 생각을 기대할 수 없다. 대학국어 과목이 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하여 진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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