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함석헌 』 출간

세계의 모든 민족이 조물주의 앞에 가지고 갈 선물이 있는데 우리는 오직 고난을 당하는 것뿐인가 할 때 천지가 아득하였다. 이 고난이야말로 조선이 쓰는 가시면류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는 요컨대 고난의 역사라고 깨달을 때 이제껏 학대받는 비녀(婢女)로만 알았던 것이 그녀야 말로 가시면류관의 여주인공임을 알았다.”

퀘이커 교도이자 역사학자, 민중계몽운동가이자 항일[]반독재 운동가 등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활동을 펼친 함석헌(1901~1989), 그는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함석헌 탄생 105주년을 맞아 그의 후배이자 사상적 동지로 꼽히는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화학공학과)가 그의 평전을 출간했다.

대학 재학시절 YMCA강당 뒷자리에서 함석헌의 성서강해를 듣던 저자는 이후 6[]25 전쟁 도중 그가 교사로 재직했던 학교에서 함석헌을 다시 만난다. “소설 「큰바위 얼굴」 속의 그 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라고  그 순가을 묘사한 작가는 그와 함께한 나머지 시간들을 풀어 놓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5[]16사태, 7[]4남북 공동성명, 민청학련 사건 등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한 함석헌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삶에 미친 함석헌의 영향을 회고했다.

함석헌은 “고난의 역사는 우리를 주인으로 다듬어 내기 위한 것”이라는 역사의식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고난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죽음은 삶의 한 끝이요, 병은 몸의 한 부분이다.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이다”라며 고난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역사의식에서 더 나아가 함석헌은 “인간은 점점 더 인간적으로 깨어갈 것이요, 역사는 점점 더 씨?이 그 주인이 돼갈 것”이라 확신했다. 씨?이라는 개개의 생명체가 역사의 주인이라 믿은 그는 그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함석헌은 5[]16 직후 『사상계』에 “혁명은 사람만이 한다. 군인은 사람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도 군인이 혁명하려 해서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요지으 글을 게재해  5[]16쿠테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한편 그는 “국민의 정신은 점점 더 떨어졌습니다. 그럴수록 기대되는 것은 지식인인데 그 지식인들이 온통 뼈가 빠졌습니다.”라며 『씨?의 소리』를 창간하여 민중 계몽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다. 또 그는 “그렇습니다. 하고 죽읍시다. 이 역사가 살아날 것입니다. 씨? 여러분 3월입니다.”라며 유신반대 개헌서명운동에서 목소리를 드높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스물일곱 살 아래인 저자에게 ‘김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일화, 여인과의 풍문 속에서 고뇌하던 함석헌의 모습 등을 통해 함석헌의 인간적인 면모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지금 함석헌 선생에 대한 글을 남긴다는 것은 역사의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함 선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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