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법대교수 법학부

지난 겨울 계룡산에 올랐다. 길잡이 청년은 속도전하듯 인솔했다. 등산팀은 따라잡느라 헉헉거렸다. 대오가 토막나 제 길로 가고 있는지 자문하며 올라가야 했다. 안내자에게는 늦게 헤메며 올라오는 일행이 답답하게 여겨졌으리라. 모든 피곤은 산정의 호연한 정기를 흠뻑 호흡하며 씻어졌지만 어떤 산행이어야 할까 잠시 생각하게 했다.

반대편 기억으로 이 교수와의 산행이 떠오른다. 우리 법대 교수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다. 몇 명이 동행하든 대열은 끊어지지 않고, 움직일 때는 움직이고 쉬고 싶다고 느낄 때는 휴식이 이루어진다. 등산에 단련된 사람도 있고 어쩌다 참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리함을 느낄 수 없다. 해지기 1시간쯤 전에는 도착지점에 가까이 가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산행길의 끝까지 흐름은 물 흐르듯 이어진다. 이런 비법은 무엇일까. 

먼저 색다른 것은 대오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보통 제일 후미에 선다. 선두에는 물론 길잡이가 될 만한 사람을 배치한다. 두 번째는 그날 제일 힘들어할 만한 사람이 서고, 세 번째는 그 다음 힘들어할 만한 사람의 순으로 선다. 그렇게 되면 뒤로 갈수록 힘있는 사람이 서게 된다. 힘없는 사람이 뒤쳐지면 따라가느라 헉헉거리며 어느새 대열이 끊어져 버리지만, 이런 순으로 하면 뒤쪽 사람이 조금 여유가 있으므로 대열이 끊어지지 않는다.

선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려운 길에는 이 교수 자신이 선두를 서기도 한다. 선두는 뒤에 선 사람의 호흡을 느껴야 한다. 호흡이 가쁜 지경에 이르면 속도를 늦추고, 호흡이 편안하면 속도를 조금 낸다. 전체의 속도는 바로 두 번째 걷는 사람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약자도 자기 리듬대로 갈 수 있으며, 선두에 붙어 있으므로 심리적 피로감이 덜하다. 후미의 이 교수는 흐름을 보며 휴식 신호를 보내곤 한다. 대열이 끊어졌거나 바로 앞사람의 무릎이 후들거리는 기미를 보이면, 그것이 휴식신호를 보내는 순간이다.

이 교수에게 산행은 그냥 일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할 때 본인에겐 좀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맞춘다. 당일행이든 종주길이든, 코스를 정하기 위해 한주 전쯤에 혼자 코스를 답사한다. 참석예약자 중에서 초보자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걷는다. 그 초보의 예상리듬에 맞추어 코스를 정한다. 그런 보이지 않는 준비 가운데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는 산행코스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 교수와의 등산은 자연스럽다. 자연 속에 들어가니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하긴 하다. 요란함이 없고, 장비도 단촐하고, 먹을 것도 필요한 것만 가져간다. 그러니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산행을 마친 뒤 맥주 한 잔, 그 속에서 오가는 대화들로 마음이 풍성하다.

선한 리더십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후미에 위치하게 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앞서게 하면서 격려하는 것. 앞장설 때는 뒷사람의 호흡을 느끼고, 뒤에 설 때는 앞사람 무릎의 떨림을 느끼면서 전체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것. 남이 모르는 가운데 준비하면서 약자를 기준으로 속도를 잡는 것. 자연스러운 가운데 리더십이 있는지도 느낄 수 없게 하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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