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법학부·04

MRBT는 2004년 대학생들이 만든 자원봉사 농구 동아리로, 현재 일요일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 봉원중학교에서 장애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제발…….”

어른 얼굴보다 조금 큰 지름 25cm의 농구공이 상준이의 손을 떠나 링을 향해 날아가던 순간, 모두들 숨죽인 채 공의 궤적만을 보고 있었다. “제발 들어갔으면…”하는 우리팀과 “제발 안 들어갔으면…”하는 상대팀의 간절한 바람만을 뒤로 한 채.

“철렁!” 소리와 우승 트로피, 이것이 그 순간 이후 기억나는 두 가지다. 3점슛이 마법같이 그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그 때, 지난 2년간의 모든 기억이 한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 기억의 끝자락에 우리 장애인 선수 아이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국대회 우승. 2년 전 정신지체인 농구팀을 창단할 때만 해도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생이, 그것도 농구라면 점심시간이나 체육시간에나 해 봤을 뿐인 비전문가가 코칭스태프인 팀. 어린 티가 나는 중학생 정도의 정신지체인 아이들로 구성된 팀.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 상설 정신지체인 농구팀이자 청소년들이 창단하고 운영하는 MRBT(Mental Retardation Basketball Team)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주 일요일 두세시간씩 이뤄지는 연습은 흔히 생각하는 농구팀의 훈련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깝다. 연습시간동안 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역할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땀 흘리며 그들과 부대끼는 것이다. 비록 전문적인 기술이나 전술을 가르쳐주지는 못했지만 연습을 하루 이틀 해나가면서 아이들과 같이 뛰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연습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중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농구나 축구 등을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다. 정신지체아동의 경우 신체능력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뛰어날 때(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군이나 세계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김진호 군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도 있지만 농구, 축구 등의 단체 운동을 또래 아이들과 즐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MRBT를 통해서 농구도 하고 친구도 사귀며 사회성도 배워 나가는 등 매우 즐거워하고 있고, 이런 즐거움을 나와 내 친구들이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2004년 MRBT를 창단할 때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창단, 운영 비용 등의 자금 문제는 물론, 연습장소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작정 공개 선수선발을 실시해 창단식을 치렀고 기부금 후원 및 장소 대여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 황당한 일이었지만 젊음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팀 막내 주훈이는 처음 팀에 들어왔던 2004년 여름에는 키가 작고 힘이 약해 슛이 링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앞에 서있던 내 가슴으로 오곤 했다. 그 때는 솔직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요즘 연습을 나가면 능숙한 드리블로 멋지게 골을 성공시키는 주훈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2년 새 자신 있게 슛을 하게 된 주훈이를 보며 역시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 수동적으로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든지도 어느덧 3년이 돼가고 있다. 대학에 와서 학업 외 여러 활동을 하다보니 때로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생겼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MRBT 경험을 되새기며 의지를 다지곤 한다. 이제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농구장으로 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MRBT를 통해 성장한 것은 장애아동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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