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네 번째의 가을을 맞이한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그만큼 대학원 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 내가 연건캠퍼스로 대학원을 온 것은 어쩌면 공대생으로서 관악산 중턱에 파묻혀 살아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람도 많고 공연도 많고 시끌벅적하기도 한 이 대학로에서 나 또한 그들처럼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낱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삶의 공간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힘든 일상의 스케줄에 쫓기고, 나를 원하는 그 누군가의 요청에 끌려 다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학위에 대한 초조함에 흔들리면서 사는 일이 어디에 위치한다고 하여 다를 일이 있을까. 이 곳에 온 4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연극 한편 관람해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혹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자기 시간을 잘 쪼개어 대학원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삶을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나의 삶은 나의 일상에 기초하는 바, 일상이 그러하지 않을진대 나의 삶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삶은 일상에 기초하는 바

그렇다면 일상을 바꾸어 보자


그러기에 일상을 바꾸어보자. 내 전공, 내 할 일과 관계있는 것들만이 내게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쓸모없는 짓,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에는 내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지친 삶에 한줄기 단비가 될 수도 있다.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일관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독특한 악센트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음악 작품에도 어색하지 않은 엇박자나 불완전화음이 아름다운 선율로 나타난다. 이렇듯 예술 작품에 악센트라는 게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도 가벼운 변화를 주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삶의 악센트가 단순한 차원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로 나와 관련된 관계들이 나의 일탈을 허용해 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주어야 한다. 만약 나와의 관계를 무시한 채 일탈을 시도한다면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익과 결부되어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두 번째로는 나 자신이 이러한 악센트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때조차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을 실험들, 컴퓨터로 돌려놓은 시뮬레이션, 도서관에서 찾아놓은 자료들.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생각들뿐인데 일탈이 즐거울 수가 없다. 무엇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하라는 명언이 있듯 일상에서 벗어난 삶에도 충실할 필요가 있다.

 

 

요즘의 가을 하늘은 참으로 파랗다. 메신저에서 사람들의 대화명이 온통 예쁜 가을에 대한 것들이다. 온종일 책과 씨름하고, 실험 장비에 매달리고, 컴퓨터 앞에서 빤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에서 한번 벗어나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자. 새파란 하늘과 순백의 구름들을 보면 아마도 내 몸과 마음도 그들과 같이 깨끗해지지 않을까 싶다.

 

최종민

대학원 협동과정 의용생체공학 전공․박사과정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