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길 풍경』 출간

“가난하다고 해서 괴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골목길이 없었다면 이렇게 가슴을 떨리게 하는 시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오랜 세월 서민들의 삶과 함께 했던 골목길은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하나 둘씩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잊혀가는 골목길을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 임석재 교수(이화여대[]건축학과)는 카메라를 들고 서울 곳곳의 골목길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직접 지도를 그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서울, 골목길 풍경』이다.

임 교수는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라고 말하며 골목길이야말로 외국 유명 건축가의 작품보다 더 창조적이고 뛰어난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되지 않은 비대칭성, 무계획성 등은 인간의 중요한 건축양식이며, 골목길에는 사찰이나 한옥의 순환 공간에서 나타나는 갈림과 꺾임의 공간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학자의 눈에 비친 골목길은 조형과 물리적 골격의 관점에서 볼 때 추상미가 뛰어나며 곳곳마다 빼곡히 붙은 담과 계단은 ‘박자와 율동을 만드는’ 일종의 작품이다.

▲ 용산 2가동 길. 삐뚤삐뚤한 골목길의 윤곽은 비정형성이라는 조형적 가치를 갖는다.


또 저자는 골목길에 ‘근대의 산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골목길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동산의 맨땅 위에 모여 살면서 그들만의 공간개념과 조형의식으로 만든 기록이자 증거”라며 “이것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압축 근대화와 같은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시대의 산물로만 치부됐던 골목길이 실제로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성의 고민이 반영돼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한강과 남산을 끼고 있어 살기 좋은 한남동, 이주노동자와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가 모여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이태원, 한옥집이 많아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삼청동의 골목길을 담았다. 여기에 ‘인심좋은 슈퍼집 아줌마’, ‘친절한 드라이 크리닝 사장님’ 등  골목길의 사람사는 이야기도 따뜻하게 녹아 있다.

작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길에 건축학적인 해석뿐 아니라 아늑하고 소박한 인간미를 부여한다. 텃밭을 가꾸는 할머니와 구수한 된장찌개가 있는 곳, 여름날 평상에 앉아 사람들이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그곳엔 그동안 잊혀졌던 조화와 어울림이 남아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