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첫 번째 질문. ‘인간의 도덕적 태도는 인류가 진화하면서 사회가 확대되자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보장해 안정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선택된 적응양식이다.’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그럴듯한 이야기인가, 도덕 본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가? 두 번째 질문. 갈릴레오가 겪은 종교재판은 무지몽매한 종교 광신자들이 저지른 과학연구에 대한 탄압인가, 학문연구에 우호적이었던 종교계의 복잡한 정치적 동맹관계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던 갈릴레오가 지나치게 고집을 부려 발생한 사건인가? 마지막 질문.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가스 냉장고가 지금의 전기 냉장고에 비해 기술적 효율성이 떨어져서 포기됐을까, 가스 냉장고가 사라진 이유는 각각의 기술을 지원하던 정치세력의 힘의 차이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상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탐구를 수행하는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 제기하는 질문의 예다. 과학기술학은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며 변화해가는 과학기술의 여러 측면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출발부터 철저히 학제적 접근을 취했다. 앞의 예에서 첫 번째 질문은 철학적인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과학기술사의 탐구대상이며, 마지막 질문은 과학기술사회학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에 속한다. 이외에도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정책이나 과학기술문화에 대한 연구도 포함하며 최근에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과학기술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의 개념적, 역사적,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지만 단순히 과학기술을 직접 연구하는 과학자와 공학자의 작업에 ‘주석’을 다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자신의 고찰이 과학기술 연구의 구체적인 과정과 최근까지 합의된 과학기술 지식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런 의미에서 과학기술학은 자신의 연구대상인 자연과학과 사회과학까지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등 학제적인 성격을 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과학기술학의 또 다른 특징은 ‘과학기술의 사회문화적 측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일부 과학기술학자들은 과학기술학의 영어명칭인 STS를 ‘과학, 기술,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렇게 된 배경은 20세기 이후 과학기술 연구가 과거에 비해 대규모 직업화되고 엄청난 물적, 사회적 자원을 사용하게 된 데 있다. 이는 과학기술 연구를 지식탐구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 연구자원의 분배나 사용이 사회적으로 동의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학은 이러한 인식이 제도화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또한 다양한 지적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함께 모여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바람직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미래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학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욱 교수(한양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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