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외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우리 말에 관심도 많아지고 자주 외국어와 한국어를 비교하곤 한다. 또 남성들이 만든 제도 속에서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성차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은 일상의 언어에도 만연해 있는데, 그 차별의 정도는 독일어보다 지나치다. 더욱 문제 되는 것은 사회제도로 인한 성차별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언어에서의 성차별은 거론되지 않은 채 무심히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의 일이다. 나이 60이 넘은 남자분이 “요즈음은 자주 잊어버리고 깜박 깜박해” 하니까 같이 있던 여자분이 “여자들은 벌써 전부터 그랬어”라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 또 수영장에서 한 남자 아이가 수영을 잘 하자 어느 어머니가 “남자아이라 수영을 잘 해”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 접하면 ‘이럴 때 꼭 남녀의 구별이 필요한가’라고 자문해 본다.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 수영을 잘 하는 것은 남녀의 구별보다는 개인의 기질과 능력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이 외에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표현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여자라 그런지 일을 잘 못해”, “여자가 뭘 안다고 그래”와 같은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남성들 역시 “남자가 이 정도는 해야지”, “남자답지 못하게…” 같은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남성과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 편견이 일상생활에 깊숙히 뿌리박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러한 편견은 사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부정적인 사고는 편협한 시각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창의력을 저해한다. 기업들이 창의력 있는 인재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창의력을 위해서는 열린 사고가 전제되어야 하고 또 이러한 사고는 이를 표현하는 언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일상 용어의 성차별 요소부터 없애야 진정한 양성평등 가능해

독일어에서는 성차별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미혼여성인 경우 이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제는 Fraulein(아가씨)이라고 하지 않고 Frau(부인)라고 부른다. 남성명사(예: Student -대학생)가 양성을 대표하던 것은 여성도 포함되었음을 표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단어(StudentInnen)로 대치되곤 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여성도 포함됐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 ‘-Innen’을 대문자로 시작한다. 독일인들이  양성평등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표현들을 개선하고 있는 점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래에 호주제의 폐지, 여성할당제 등의 도입으로 남성의 입지가 위축된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여태까지 언어에서조차 억압되어온 여성의 애환과 고뇌의 질과 양에 견줄 수 있겠는가?

신문이나 TV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위험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기사나 보도를 접하게 되면 불안감이 더해간다. 이러한 시기에 반목과 질시는 우리의 삶을 어렵게 할 뿐이다. 물론 인간 뿐 아니라 생물의 세계, 특히 동물의 세계에서도 성의 구별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동물보다 진화했다는 인간 사회에 성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남성과 여성이 편견에서 벗어나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이를 언어로 순화시켜 더욱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할 시기이다.


이광숙 사범대 교수ㆍ독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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