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외교학과 03)

4월의 어느 날, 인문대에서 수업을 마치고 사회대로 내려가는 길. 화사하게 피어있는 길가의 꽃망울에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시선을 돌린다. 여기에는 개나리, 저기에는 진달래, 그리고 머리 위로 비추는 따스한 햇살. 자하연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따라 하늘거리는 물방울무늬 스커트.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벤치에 올망졸망 모여 봄 개울 녹는 소리마냥 지저귀는 새내기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풍경에서 3년 전의 나를 만난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맞이했던 스무 살의 봄. 조금은 달뜨고 조금은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우정과 연대(連帶)라는 감정의 수사(修辭)가 새내기들을 마법처럼 옭아맸다. 2003년 4월의 오후가 내게 선물했던 빛의 공간은 분명 밝고 투명했지만, 보듬어 안고 그 향기를 음미하기에는 너무 힘겨웠다.

혼란스러웠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이라크 전쟁 반대 동맹휴업’과 ‘4ㆍ19 혁명정신 계승’의 기치가 학교를 뒤덮었다. 반전평화(反戰平和)의 광장 아래에서는 즐거운 봄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롤러코스터’와 ‘델리스파이스’의 낭만이 서린 록큰롤이 울려 퍼졌다. 그 틈에서 나는 아크로폴리스와 중앙도서관을 따라 난 자하연의 갈림길 위를 말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모두 어딘가로 바삐 달려갈 때, 소리죽여 울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돌층계 위에 앉아 기형도 시인의 「대학 시절」을 되뇌며 구원(救援)을 바라곤 했다. 살아가기 위해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인간의 조건』을 읽었다. 그럴 때마다 4월의 하늘 아래에서 루이제 린저와 한나 아렌트의 조용한 목소리가 내게 다가왔다. 그 음성에 나는 취하고, 어리고, 축복을 받으며 조금씩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즐거웠고, 외로웠지만 따뜻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관악의 네 번째 봄을 맞이한다. 지금도 나는 삶이라는 길에서 힘들고 어려운 때를 맞이해 걸어가기 힘들 때면 좋아하는 책을 펴든다. 그 속에는 자신의 삶을 너무나도 꽉 껴안았던 니나가 있고, 홀로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만 언제나 모두와 함께하고 있는 아렌트가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냉혹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까닭모를 외로움을 느낄 때에도, 나는 언젠가부터 조용히 울고 있었다던 신경림 시인의 「갈대」와 황동규 선생님의 「조그만 사랑 노래 」를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철모르던 시절의 설익은 감수성. 스무 살의 따스한 계절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되새길 때 가장 먼저 사용하는 어구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의 페이지로 소중하게 아로새겨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이 두서없고 치기어린 글이, 자하연의 첫 번째 봄을 맞이하는 또 다른 스무 살들에게 작은 의미로나마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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