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정례 학술세미나

지난달 27일(목)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정례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김정호는 지도를 어떻게 그렸나?」를 주제로 규장각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대동여지도로 잘 알려진 김정호를 재조명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기봉 연구원(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대동여지도에 나타나는 ‘충청도 해미현(海美縣)’ 사례를 토대로,  김정호가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의 지도 및 지리지를 종합해 지도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충청도 해미현은 조선 태종 7년(1407년)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如美縣)이 통합된 지역으로 남쪽 정해현은 읍치(邑治: 고을), 북쪽 여미현 지역은 월경지(越境地: 고려[]조선시대 소속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의 특수구역)로 정해졌다. 그런데 지도에는 해미현 근방의 ‘서면(西面)’지역이 읍치의 북쪽에 있는데도 서면이라는 이름 때문에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으로 잘못 표기됐다. 이기봉 연구원은 “그 지방을 직접 답사할 경우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인데도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것은 김정호가 지도 제작시 당시의 지도 및 지리지를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호가 일일이 전국을 답사해 지도를 제작했다는 1980년대의 이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김정호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렸다는 신화는 깨졌지만 수많은 지도와 지리지를 일일이 검토하고 20년간 골방에서 지도를 만들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하다”며 “대동여지도는 천재적인 능력이나 애국심의 발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학자의 부단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기봉 연구원은 “지도의 가치를 정확성에만 두는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며 지도의 의미를 “인문적[]자연적 정보의 위치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도도 거리와 방향이 실제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위치와 방향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지도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지도를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삼각측량, 항공사진촬영 등의 기술적 문제일 뿐”이라며 “고도로 정밀하지 않다는 이유로 고지도가 현대지도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김정호가 정확성의 추구보다는 당시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편찬해 정리하는 데 중점을 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동여지도 이전의 지도가 대량제작이 힘든 필사본이라는 점, 국가정보 누출 가능성 등의 이유로 양반 계층에만 전해진 반면, 목판본인 대동여지도는 대중적으로 널리 전해진 일종의‘조선시대 히트상품’이었다. 이 연구원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든 것, 이 점이 바로 김정호를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설립을 기념하고 한국학 연구 동향을 공유하기 위해 준비된 규장각 정례 세미나는  앞으로 매월 둘째주, 넷째주 목요일 오후 1~3시에 규장각 회의실(2층)에서 열릴 예정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