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고 싶습니다!” 박카스 CF의 한 장면을 찍는 듯, 정확히 1년 전 이곳 기술정책 협동과정의 면접이 있던 날 여러 교수님 앞에서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씀드렸다. 기쁜 합격 발표가 있은 후, 12월 말 눈 덮인 관악산 중턱의 삭막한 38동 건물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지가 불과 몇 주 전의 기억 같은데, 이제는 벌써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낙엽이 아름다운 가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철저한 등교시간 지키기 및 정책 세미나 참가, 스터디 등의 바쁜 나날들이 계속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런 생활에 길들여졌는지 뭔가 채워지지 않은 2% 정도의 허전함이 나를 지배하곤 했었다.

 

그런 허전함에 빠져있을 때쯤, 가끔 늦은 저녁에 순환도로를 달리는 이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고, ‘그래, 다시 달려보는 거야!’ 하는 결심이 나를 다시금 러너의 길로 이끌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서울 관악 마을에서 공부하기 전 포항 지곡 마을에 있을 때 달리기는 내 일상의 나태함을 깨워주는 큰 자극제였다. 또한, 포항그린넷 마라톤 클럽 회원들과 함께 참가했던 마라톤 대회는 나 스스로에 대한 대단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래, 모른 척 혹은 의도적으로 내 마음 속 꾹꾹 감추어 두었던 마라토너로서의 꿈을 다시 발휘해 볼까나? 국내 최대의 마라톤 축제인 2003년 10월 19일 춘천 마라톤 풀코스에 과정 신입생 한 명과 함께 도전하게 되었고, 연습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로 우리는 무모한 도전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다. 춘천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 탓에 즐거운 레이스가 이어졌지만, 절대적인 연습량 부족이 우리 몸을 서서히 압박하기 시작했고 풀코스 도전이 처음인 은석 형이 차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의 발목에 찾아온 통증이 결국 레이스를 멈추게 했고,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에 맞춰서 뛰기와 걷기를 반복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은 슬프거나 혹은 안타까운 것이리라, 마라톤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반드시 이겨내고 말리라.

 

자신과의 싸움 이겨내 스스로 대견함 느껴

 

달리면서 여러 군상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한 시각 장애인은 정상 사람의 손과 연결된 로프에 손을 맡긴 채,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한 팔이 없는 사람, 거의 70세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등등. 그분들과 함께 레이스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가! 그들이 느끼는 처절한 고통에 비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행복한 것이리라. 우리의 고통스러운 혹은 행복한 질주는 춘천 종합 경기장이 다가오면서 거의 끝남을 암시했다. 마침내 골인, 그리고 이후에 맛보는 짜릿한 완주의 느낌이라니! 그 후, 나와 은석 형은 스스로의 싸움에서 이겼음을 암시하는 완주 메달을 목에 매달고 서울로 복귀했다. 내일은 다시 기술정책 대학원생으로 돌아와 학업과 연구에 충실해야 하기에.

 

달콤한 꿈과 같았던 2003년 춘천 마라톤이 끝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 치열했던 자기와의 싸움에서 결국 이겨냈기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곤 한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그래, 이곳 기술정책 대학원 과정에서의 생활도 마라톤 레이스에 비유할 수 있기에 천천히 꾸준히 소중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야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음 대회에는 미리 많은 연습을 해서 좋은 기록을 남기면 좋으련만! 다시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내 몸을 지배할 때면 형광색 러닝화를 신고 어딘가를 달리고 있으리라.

이민규
공대 기술정책 협동과정ㆍ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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