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욱 교수(인문대 국사학과)

1학기 한국 현대사 강의는 매달 기념일만 잘 챙기면 된다. 4월엔 1960년의 4·19, 5월엔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6월엔 1987년의 6월 항쟁. 또 각 사건의 발생일 전후해서 해당 사건을 수업하면 훨씬 생동감 있는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기억방식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그 무렵 다시 한 번 법석을 떨기 때문이다. 예컨대 작년 5월 서울시가 5·18 경축기념식을 계획했다가 세간의 빈축을 샀다. 5·18이 추모 대상이지 경축 대상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서 남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축제기간 중이었던 5월 18일 관악캠퍼스에서는 데킬라 시음회가 있었고, 내레이터걸과 도우미들이 나타나 학생들의 시음을 도와주었다. 대학문화가 건강한 대안문화의 생산은커녕 상업문화에 물샐틈없이 포위되어서 학생들이 소비문화에 무장해제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애처로웠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가 누리는 민주적 권리의 형성에서 5·18이 했던 긍정적 역할을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채 ‘그들만의 축제’를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추모와 기념과 경축은 구분하고 살았으면 한다.

‘조용한 외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불식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정부가 독도 도발을 일본이 청산해야 할 제국주의 식민지배 역사의 문제로 인식하고 정면 대응키로 해 한일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독도문제의 역사성을 따질 때 중요한 세 개의 계기는 1905년 일본 시마네현 고시에 의한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 1951년 샌프란시스코대일강화조약에서 일본의 의도에 따라 한국이 협상·서명국에서 배제되고, 독도에 대한 영토 조항이 삭제된 것, 1965년 한일협정에서 독도 문제를 포함해서 한·일 간의 과거사가 미봉적으로 처리된 것이다. 대통령 담화는 이 가운데 첫 번째 계기를 강조함으로써 독도문제가 영유권 분쟁 차원이 아니라 영토주권의 문제이자 역사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노대통령의 발언을 국내정치용으로 평가절하했지만, 이번 사태를 초래한 일본의 독도수역 수로탐사 기도는 아베 관방장관 등 자민당내 극우파가 포스트 고이즈미를 노리고 주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독도는 한·일 간의 문제이기도 하고, 한·일 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독도문제가 최근 빈발하는 것은 한·미·일은 물론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질서의 변화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댜오위다이(센가꾸제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북방도서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평화헌법 개정, 국제적으로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포함한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이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자 상징물이 되어 있다. 최근 국내·외 사태와 관련해 역사인식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것은 한국과 그 주변 질서가 전환기에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역사성에 대한 탐구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그리고 역사는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다. 우리가 몸을 낮추어 경청하고자 한다면 역사도 기꺼이 지혜를 나누어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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