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 박효종 교수(국민윤리교육과)

대학의 수장을 뽑는 막중한 선거를 앞두고 지금 서울대 교정에는 초조함과 설렘이 교차하고 있다. 초조함이 중책을 수임하겠다고 나선 총장후보자군의 몫이라면, 설렘은 새 총장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소망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 설렘에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기대감이 훨씬 큰 게 사실이다.

새 총장은 단연 대학자율의 파수꾼이자 보루가 되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학은 마땅히 자율을 누려야 하는 곳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대학자율에 대한 도전들이 학내ㆍ외에 가득하다. 멀리는 정치권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 가깝게는 사회단체들에 이르기까지 대학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하는 훈수와 간섭이 부쩍 심해졌다. 대학이 이런 저런 소리에 가볍게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은 백년대계를 책임지고 있는 지성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류에 영합하고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며 좌고우면하는 나약한 모습의 총장을 원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되고 외풍을 막아주는 병풍의 역할을 하는 총장을 원한다. 물론 대학은 총장 개인보다 시스템에 의하여 움직이는 조직이다. 허나 인물의 무게가 갖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외부로부터의 유혹을 물리치고 대학자율을 위해 헌신하려면, 총장은 4년의 임기를 꽉 채우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지금은 개혁의 시대다. 새 총장은 어떤 형태로든 개혁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혁’을 위해서는 대학의 목표와 지향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서울대는 국내 수준의 대학으로 안주하기보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며 국민들의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준화의 철학’보다 ‘수월성의 철학’을 추구해야 한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수월성의 당위론을 말로 되뇌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낙후된 교수의 연구여건과 교육여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과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총장후보는 구성원들의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적 마인드로 접근하기보다는 진정성을 가진 대안으로 구성원들의 ‘가슴’에 호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형 총장도 좋고 CEO형 총장도 환영하나, 개혁을 명분으로 대학공동체를 휘젓는 총장은 사절한다. 개혁을 하더라도 공동체의 화합과 평온, 온전성이 유지되는 개혁이어야 한다. 흔히 “바꿔, 바꿔”만을 외치는 개혁주의자들은 전통의 소중함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총장은 ‘난쟁이들 어깨 위에 앉아있는 거인’으로 자부하기보다는 ‘거인들 어깨 위에 앉아있는 난쟁이’로 처신해야한다. 그러려면 이제까지 서울대가 정성스럽게 땀을 흘리며 가꾸고 일구어 온 것들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이 있어야 하며, 그 기반 위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섣부른 개혁으로 자칫 대학공동체에 분열과 반목이 생기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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