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진 사회대 교수·사회학과

기화요초(琪花瑤草)의 계절. 봄을 즐기기에 여유가 없다. 우리 사회가 국내·외 현안을 둘러싸고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양극화에 대해, 통합을 위해 극복해야 할 경제 문제라는 쪽과 분열을 획책하기 위한 정치 언어라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에 관해, 한쪽에서는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서울대도 사회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교수, 직원, 학생 모두 한 마디씩 한다. 학교 캠퍼스 안의 게시판을 보면, 여러 갈래의 발의, 광고, 선언, 선전을 볼 수 있다. 대학공동체의 속성상 다채롭고 분방한 의견이 많다. 그러나 이해에 얽힌 논란은 많되, 시비를 가리는 정론은 적다. 서울대 나름으로의 격과 품이 없다. 대한민국 최고(?)권위를 갖는 대학의 특권(?)을 포기한 것인가. 선도력이나 성찰성 모두 허약하다.

개교 60주년을 맞는 서울대의 공과는 결코 관악에 머루를 수 없다. “조국의 미래를 보려면 관악을 보라”는 다소 과장된 말이 있다. 교육이 나라의 근간이라면, 서울대가 고등교육의 중심에 서 있다는 함의다. 해방 이후 서울대는 사회발전의 과정에서 학문연찬과 인재양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서울대가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회의도 있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화로 압축되는 급속한 사회변화의 와중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까닭이다.

서울대의 자산은 다른 국립대에 우선하는 정부지원을 들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수한 학생들과 훌륭한 교수진에 있다. 이러한 서울대의 비교우위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세계일류를 지향하는 명문 사립대들이 우수한 학생과 훌륭한 교수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개혁을 서둘러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시설과 장학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교과과정과 학사제도의 개편에서 선취적이다.

지난 몇 년간 서울대도 구조조정이라는 진통 끝에 일련의 제도개혁을 이룬 바 있다. 그러나 냉철히 보아 그것은 양적 변화로 질적 혁신을 위한 시작일 뿐이다. 장래 서울대가 교육과 연구, 봉사와 문화에서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제도개혁에 대해 전향적이어야 한다. 향후 서울대가 부딪힐 가장 큰 도전은 법인화다. 법인화에 대해 성공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서울대가 지향하는 대학상(像)을 교육목표, 운영체계, 학사제도, 교과과정 등의 측면에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법인화는 단순히 자율신장과 재정확보를 넘어 책임강화와 분권확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급격히 바뀌는데 서울대가 쏜 변화의 화살이 예전의 목표에 고정되어 있다면 제도개혁은 어긋날 수밖에 없다.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고등교육 철학과 전략에 대한 지적 전망이 필요하다. 미래의 가치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지식 생산과 인력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교육 복합형 대학모델이 그 하나다. 새로운 서울대의 발전모델은 기존의 법인화를 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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