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민 사범대 교수·영어교육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적 네트워크 속에서는 말이 넘쳐난다. 그러나 모이게 되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의실은 그런 면에서 대표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주문하곤 한다. “이 강의의 주된 목적은 여러분과 내가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이 다른 모든 학생들과 공유되는 생산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음과 같이 경고의 말까지 덧붙인다. “질문을 하십시오. 질문을 하지 않는 학생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며,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의실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학생들의 침묵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나는 가끔 5분간 휴식을 갖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한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강의실은 생기가 돈다. 학생들은 서로의 친구들을 향해 굳게 닫혔던 입을 열기 시작한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활기찬 말의 향연이 펼쳐진다. 언어는 역시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5분이 지난다. 다시 나의 차례가 되고, 강의는 시작되고, 학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1980∼90년대 TV에서 본 국무회의 석상이 떠오른다. 그 속에 소통은 없다.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국무위원들의 모습뿐.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왜 저 자리에 앉아서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을까? 지식인들이 모여 있다는 교수회의 석상에서도 역시나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기는 마찬가지다. 

공적 공간에서는 별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고 받는 말이 없다. 말을 해도 잡담 수준의 소위 덕담이거나 소수의 말과 생각뿐이다. 공적인 모임에서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한 자리가 윗사람과 아랫사람, 상사와 부하직원, 교수와 학생, 선배와 후배 등으로 묶이게 되면, 그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하철이건 강의실이건 버스 안이건 언제나 그 속에 말은 풍성하다. 더욱이 요즘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블로그로, 이메일로, 인터넷 댓글로 여기저기 글이 넘쳐난다. 심지어 싸이월드에서는 일촌을 맺어 그들끼리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잡담 수준의 사적담화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공유되지만 제한적이다. 생산적으로 논의되고, 확산되고, 변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건전한 비판이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의 다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말과 글은 있되, 남는 것이 없다.

공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공적 공간에 장(場)을 만들고 생각을 함께 나누고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 자유와 지식과 사유의 공간인 대학에서부터 그래야 한다. 언어를 통해 생각을 소통하게 되면 하늘에 이를 만큼의 힘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바벨탑 신화에서 배우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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