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탈근대사회에서의 총체성 복원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본교 대학원에 다니던 늦가을이었다. 내 책에 1984년 10월 2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으니, 이맘때쯤이었나 보다. 벌써 이십 년 전이지만, 이 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기억에 생생하다. 읽어도 이해가 안 가고 읽을수록 어려워져서 머리를 쥐어짜며 읽던 책이다. 그 늦가을 날의 차가운 새벽 공기에 바짝 졸렸던 마음, 과연 이 책을 이해할 날이 오기는 할까 하는 회의가 떠오른다.



그렇게 어려웠는데, 왜 이 책에 매달렸을까? 당시는 루카치를 토대로 작품을 읽는 흐름이 루카치식의 총체성을 벌써 지워버린 탈근대주의의 유입과 섞이던 시기였다. 제임슨이 이런 두 흐름을 묶어주는 길을 내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사회적 삶이란 원래 하나로 연결되고 인류의 역사는 단일한 서사로 통합된다는 단순한 믿음을 서슴없이 내비치면서도 탈근대주의의 현란한 이론에 빈틈없이 대처하는 제임슨에게 기대보려 했다. 무엇보다 총체성에 대한 탈근대주의의 비판을, 자본주의 체제의 진행에 따라 사회적 총체성과의 연관을 잃어버린 증후로 받아치는 전략이 멋졌다. “총체성이 없다니, 무의식이 된 거지”라는 진단과, 정치적 무의식이 되어버린 총체성과의 연관을 드러내는 작업이 해석의 과제라는 처방이 나를 붙잡았다.

▲ © 이상윤ㆍ김응창 기자


그러나 그 이후에 나는 대체로 제임슨의 입장에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탈근대주의의 입장을 일부 수용해서 ‘전체’로 편입되지 않는 ‘부분’에 더 큰 애착을 가지기도 했고, ‘부분’이 투사하는 ‘전체’만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총체성이 무의식이 되었다니,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니는데”라는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인식을 중시했다. 정치적 무의식을 읽어내려는 제임슨의 해석론이 작품을 징후쯤으로 여기는 경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은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총체성이라는 욕망이 이제는 정말로 무의식이 되어 간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경험을 하나로 혹은 서로 연결시켜 보고 사회적 층위들이 중첩되는 양상을 인식하려는 시도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물론 세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많고 다양한 이름을 하나로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임슨이 지적하듯 총체성을 복원하는 작업은 실패를 통해서만 성공에 다가설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정치적 무의식』을 다시 읽고 싶은 것은 제임슨의 ‘실패’를 나눠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신광현
인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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