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 찾아낸 영화 재료

▲ © 양준명 기자
지난달 24일(금)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공연 예술학 협동과정 공개강좌 ‘공연예술과 인접예술’의 첫 문을 열었다.

이날 봉 감독은 ‘영화와 연극’을 주제로 「살인의 추억」과 영화의 모티브가 된 김광림 원작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비교하며 강의를 진행했다. 봉 감독은 “「날 보러와요」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영화화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 전부터 지녀왔던 제대로 된 범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그 연극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영화화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극 대본이 곧장 시나리오로 재탄생한 것은 아니다. 봉 감독은 “화성의 현장 답사 팀을 꾸리고 ‘내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조사하게 되면서, 오히려 시나리오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그가 ‘런던 영화제’의 게스트로 영국을 찾았을 때 우연히 알게 된 ‘잭더리퍼(Jack The Ripper) 사건’은 「살인의 추억」의 완성된 시나리오가 나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잭더리퍼 사건’은 1880년 런던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으로 ‘화성 연쇄 살인사건’처럼 용의자는 많았으나 결국 미해결로 남은 사건이다. 여기서 봉감독이 주목하게 된 것은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완전 범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여건 때문이다’는 사실이었다. 봉 감독에 의하면 “잭더리퍼 사건에 관한 논문이나 소설, 만화를 찾아보며 일종의 ‘시대적 공기’라는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시대적 공기’라 함은 범인을 못 잡을 수 밖에 없는 사회 현실을 말한다”고 설명하며 「살인의 추억」에서 드러난 현장조사 방식, 취조실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어 그는 “연극 「날 보러와요」와 영화 「살인의 추억」의 본질적 차이는 ‘악의 본질’과 ‘시대적 공기’에 있다”고 말했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살인 용의자가 영화처럼 3명이 등장하지만 이 3명의 용의자를 모두 한사람이 연기한다. 봉 감독은 이를 ‘악의 본질’을 설명하는 하나의 장치로 해석하며 이것이 바로 ‘연극’과 ‘영화’를 구분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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