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마오』

올해는 마오쩌둥 사망 30주기가 되는 해다. 마오쩌둥은 중국 사회를 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물로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야부키스스무 지음,역사넷)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생애와 그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를 비교·조명했다. 저자는 마오쩌둥을 엄격한 아버지로, 저우언라이를 인자한 어머니로 비유하며 이들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당시 중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마오쩌둥이 1935년부터 1976년까지 42년 간 중국 공산당의 주석으로서 실권을 장악하며 사회 변혁을 추진했을 때 저우언라이는 그 뒤에서 조직구조, 인사문제 등 모든 실무적인 사항을 처리해 왔다.

이 책은 ‘위대한 지도자였으나 말년에 실정을 저질렀다’는 식의 마오쩌둥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마오쩌둥에 대해 “지주에게 땅을 빼앗아 농민에게 나눠주는 토지혁명의 조직자이자 게릴라 전쟁의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 실패 등 마오쩌둥 말기의 실정과 관련해 “1949년 이후 중국에 필요했던 경제적·문화적·기술적 혁명을 추진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마오쩌둥을 ‘인민을 위한 혁명갗로 그렸다면 『마오』(장융 지음,까치글방)는 마오쩌둥을 ‘악랄한 권력갗로 묘사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10년간 마오쩌둥의 가족을 비롯해 약 480명의 마오쩌둥 측근들과 인터뷰했다. 이들 증언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권을 얻기 위해 소련의 지지를 받아 제1차 국·공합작을 추진했을 만큼 대단한 권력욕을 가진 인물이다. 또 당시 마오쩌둥이 농민의 생활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은 것에 비춰볼 때 “마오쩌둥은 불평등한 농민의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농민계층을 주목하라고 지시한 쪽은 소련인들이었으며 마오쩌둥은 농민 봉기에서 발생한 폭력의 잔혹성에서 본능적인 쾌감을 찾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1927년에 작성된 한 보고서에 마오쩌둥이 향신과 지주를 처벌할 때 행했던 잔혹행위에 대해 “경험한 적 없는 일종의 환희”라고 말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또 마오쩌둥이 후난과 장시 지역에서 농민을 지도해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1927년 ‘추수(秋收)봉기’에 대해서도 “군부대를 마오쩌둥의 휘하에 두기 위한 술수일 뿐이었다”고 평가했다. “마오쩌둥은 추수봉기가 실패한 다음에야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최측근 부하의 증언 등이 그 근거다.

저자는 “이기주의와 무책임성이 마오쩌둥의 세계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이는 중국 내에서 신격화된 마오쩌둥의 기존 이미지와는 상반된 것이어서 독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다. 그러나 마오쩌둥을 잔혹한 독재자로 단정짓는 이 책의 근거 대부분이 인터뷰에만 의존하고 있어 아쉽다.  

마오쩌둥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두 책을 통해 신격화와 전면부정이라는 극단의 시선을 넘어 그에 대한 객관성있는 판단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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