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연구소 저명학자 초청특강-유종호 전 석좌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석좌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가 지난 24일(수) 인문대 교수회의실에서 열린 ‘인문학연구원 2006년도 제1차 저명학자 초청특강’에서 「가망 없는 희망인가?-문학의 복권을 위하여」를 주제로 강연했다. ‘전후 문학평론가 1세대’로 평가받는 유종호 교수는 40년간 강단에서 문학을 강의해 왔고 약 150편의 문학평론을 발표했다.

유 교수는 “학부생들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꼽아 놀랐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하며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는 자위, 동성애 등 성적인 요소로만 가득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간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때는 성(性)을 생각한다”는 헨리 제임스의 말을 인용해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에 열광하는 것은 ‘성으로의 도피’이자 문학의 쇠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 쇠퇴현상의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만연한 전통적 교양 쇠퇴 경향과 정전(正典) 해체운동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영국 대학생들이 디킨즈를 읽지 않는다”는 조지 슈타이너의 말을 언급하며 “전통적 교양의 쇠퇴는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지식과 도덕적 원칙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상대주의가 확산돼 ‘전통적 교양’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 교양을 쌓지 않는 것이 단지 ‘취향의 문제’로 정당화됐다”고 비판했다.

또 유 교수는 “고전(古典)을 부정하는 정전 해체 운동이 고전을 ‘백인 남성중심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라고 매도했을 뿐 아니라 ‘미(美)의 개념’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비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고전이지만, 그 당시에는 고전이 아니었다”며 “고전은 정전 해체 운동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문학에서 낙담한 사람들이 정전 해체 운동을 주도하면서 문학을 가르치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유 교수는 “올바른 문학교육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문학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문학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꼼꼼히 작품을 따져 읽는 기본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독서에 학점을 부여하고, 필독서 제도를 강화하는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한편 유 교수의 강연에 대해 오생근 교수(불어불문학과)는 “본질적인 문학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문학 복원의 방법으로 ‘꼼꼼한 문학 텍스트 읽기’를 제시한 것은 협소한 관졈이라고 지적했다.

인문학연구원은 재미 소설가 이창래씨 등 문학·철학·언어학 등 각 분야의 명사들을 초빙해 매년 4차례 가량 초청강연회를 개최해 왔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