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 교수(철학과)

야당 대표의 피습과 월드컵이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두 주제가 휴게실의 주조를 이루고 있을 때 한 교수가 뜬금없이 물었다. “대추리는 요즘 어떻게 되고 있나요?” “조용한 거 보니까 잘 되어 가고 있는 모양이지 뭐.” 그리고는 화제가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만 하더라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인데, 분명히 현재 진행중인 일일 텐데 어느새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언론 탓인지 우리의 냄비근성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째 흐지부지된 느낌이다.

바로 그날 저녁 다시 대추리가 화제에 올랐는데 평택에 아들을 전경으로 보낸 친구 때문이었다. 미군의 한국 주둔에 불만이 있는 사람에게조차 평택 시위현장은 시위를 하게 된 본안, 즉 미군기지 이전의 정당성 문제보다 시위하는 모습 자체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모두 우리 역사의 시계추가 30년 전과는 정반대의 정점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시위대의 젊은 학생이 이마에 피를 흘리고 비슷한 또래의 젊은 전경이 눈을 감싸쥐고 있는 광경은 모두 안타까웠지만 전경이 더 안 되었다는 쪽이 그날의 중론이었다. 물론 전경 아들을 둔 친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위대는 자발적으로 갔으니까 덜 억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군 부대와 국방부를 지키는 세계 최강의 전경이 최루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다치고 밀리는 현상을 놓고 공권력의 상실이니 무정부 상태니, 말도 많고 비난도 많지만 이 또한 우리 역사가 지고 있는 부채인 만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단지 역사의 시계추가 반대방향으로 옮겨지기 전 자유와 질서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고 시위의 한계와 경찰의 역할을 분명하게 하여 다시 최루탄이 등장하지 않아도 약자와 소수의 의사표명이 자유롭고 존중받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서울대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학교에 최루탄 가스가 난무하고 데모를 주동했던 학생들이 교수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명되던 때에는 학교에 경찰만 없으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꿈같이 느껴졌던 그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세계에서 제일 시끄러운 대학이 되었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밖에 앰프를 틀어놓고 외친다든지, 불과 수십 명이 모여 집회를 하면서 마이크를 사용하여 학교 전체를 시끄럽게 할 때 질서에 대한 강한 욕구가 생긴다.

그렇지만 어찌하겠는가. 다 역사의 산물인 것을. 우리가 너무나 강한 질서, 정당성이 없는 공권력 때문에 30년 이상 제대로 말도 못하고 병을 키워 왔는데 민주화가 되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병이 씻은 듯이 낫겠는가. 30년 된 병이면 낫는 데 최소한 15년은 걸리게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조금만 참고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앞으로 도서관 앞에서 집회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접하고 이제 완전히 회복기에 접어들었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물론 이 한 번의 선언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율이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은 우리가 역사의 짐을 감내할 인내심을 키워주기에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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