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에서 이용석까지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씨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장을 연 사건으로 평가된다.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전씨의 충격적인 항거 후 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 결성을 시작으로 2500여 개에 달하는 노조들이 속속 설립됐으며, 73년 신진자동차(현 GM대우), 원풍모방, 동일방직 등 대기업에도 노조들이 탄생했다.

 

70년대 노동운동이 기본적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조설립 투쟁이었다면 80년대는 결성된‘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89년 4월 덕진양행 노조위원장 김윤기씨는 분신사건을 통해 잘 드러난다. 조합원 폭행, 단전, 단수, 고발 등 노조 파괴 음모를 획책하던 사측이 공장 이전까지 내세워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려 하고, 교섭에도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김윤기씨 외에도 84년부터 91년까지 부당해고와 노조탄압에 항의, 자결한 노동자는 박종만, 이석씨 등 30여 명에 이른다.

 

70년대 생존권 투쟁에서 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한편 79년 12ㆍ12 군부쿠데타 이후,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관심은 노동문제를 넘어서 민주화 등 시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다. 80년 6월 성남의 노동자 김종태씨는 노동3권 보장과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신촌 이대 앞에서 분신했으나 정부의 보도통제로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근래에도 노동자들의 자결은 계속되고 있다. 95년 박삼훈 씨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치며 분신했고, 97년 대우조선 노동자 최대림 씨는 IMF이후 가속화된 정리해고, 근로파견제 등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에 반대하며 분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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