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종 교수(농생대·식물생산과학부)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우리는 매일 일정량의 에너지와 여러 가지 영양분을 균형있게 섭취하지 않고는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이 에너지와 영양분의 주공급원인 쌀을 비롯한 우리 농산물이 요즘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다. 2004년 말에 일단락된 WTO 협상에서 쌀 관세화 수입을 당분간 유예시켜 염려가 일시적으로나마 미봉되는가 싶더니 미국은 FTA 협상의 서두부터 쌀과 농산물의 무조건적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양곡자급율이 26%를 밑돌아 식량주권을 주장하기가 부끄러운 처지인데 그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농산물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은 품종의 능력이 미흡해서도 아니고 생산기술이 낙후되어서도 아니다. 주된 원인은 생산을 위한 경작면적이 협소하고, 높은 땅값·노임 등이 단위면적당 생산비를 상승시켜 생산물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농산물의 시장경쟁력이 우수한 나라는 대부분 경작면적이 넓고 천혜의 생산환경이 구비된 나라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농산물의 국내생산을 고집할까? 저렴한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서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농산물을 적정가격에 언제든지·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산물은 자연환경 의존도가 높아 시간적·공간전 또는 양적·질적 생산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식량은 대체재가 없고 품목이 고정되어 있다. 쌀이 부족하다고 식단을 서구식으로 바꾼다면 우리 몸이 적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생산기반은 일단 붕괴되면 재생이 불가능하거나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기상이변의 빈도가 잦아지는 이때에 언제 세계적인 흉년이 들지 알 수가 없으며, 국가간의 이해관계나 다른 원인에 의해서 지금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에도 식량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식량은 무기화가 가능하며, 농산물은 경제적 품목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물론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얻는 홍수예방, 생태계 유지, 국토보전 등 우리의 안전과 풍요를 보장해 주는 간접적인 효과 또한 막대하다.

서구 선진국들의 식량사정을 보면 양곡자급률은 100%를 상회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스위스마저 60%를 넘게 자급하고 있다. 왜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는 곡물생산업에 혈세를 투자하는 것일까? 그들은 초경제적 가치를 지닌 식량과 국토 보전의 중요성을 주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 정책입안자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우리의 식량과 농작물에 밀어닥친 풍파를 대하면서 식량작물의 육종학을 전공한 필자는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작물개량 연구 이외에 묘안을 낼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흔히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하면 금방이라도 기막힌 작품을 요술처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는 작물이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선택된 고도로 발달된 유전자의 집합체임을 간과한 공상 수준에 불과하다. 미래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작물을 연구자 마음대로 설계하고 만들 수 있다면 즉, “designer crops (맞춤작물)”의 창조가 가능하다면 요즘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식탁은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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