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도전과 재정 문제에 직면해서 독일 대학은 변화 중

독일의 교육이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제학력평가계획(PISA)이란 이름의 청소년 학습 능력 평가를 실시했다. 32개 OECD 가입 국가 중에 독일(487점)은 21위로 OECD 평균점(500점)에도 미치지 못 했다.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는 이 결과에 대해 10여 면에 해당하는 기획을 내보낼 정도로 독일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독일 교육에서 특정 문제가 부풀려진 것이라고 지적하며, 대부분 문제는 통일 후 재정 악화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독일 대학 제도는 미국식 제도와 많이 달라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다. 대학이 모두 평준화되어 있다는 점, 토론과 글쓰기를 중시하는 강의 시스템, 실습을 강조하고 부전공을 필수로 해 다양한 교양인을 만들어내는 제도 등은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것들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대학신문』은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베를린, 괴팅엔, 뮌헨의 대학을 직접 탐방 취재했다. 『대학신문』은 4회에 걸쳐 독일 대학 교육의 특징과 개혁 모습을 연재한다.

독일 교육이 현재 변화 중이다. 교수당 학생 비율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3~4배나 되며, 졸업 연령도 평균 29세로 다른 나라에 비해 서너살 많다. GDP 대비 교육 예산도 OECD 가입국 평균치보다는 높지만 핀란드, 스웨덴, 일본, 미국보다 뒤처지고 있다. 이에 현재 서울대에 교환교수로 있는 쾰러 교수(마르부르크대․독문학)는 “앞으로 5년 동안 독일 교육의 모습이 급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변화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독일인들이 제시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 © 최정민 기자
변하는 것들

독일 대학의 변화는 ‘세계화,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미국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와 ‘재정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정리된다. 

▲세계화
91년 유럽 공동체 29개 나라의 교육부 장관들은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모였다. 유럽 내의 학위시스템을 통일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비루스 교수(뮌헨대․독문학)는 유럽에 적용할 일원화된 제도는 독일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미국식 제도이며, 독일은 세계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또 독일은 WTO 교육 개방으로 미국이나 영국교육의 유입에 맞서야 하는 동시에, 우수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에 봉착하고 있다.


이같은 신자유주의적인 흐름 아래 독일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고수하는데 어려워움을 겪고 있다. 독일 대학의 특징인 학생과 교수들에 대한 최대한의 자율성 보장과 교양 시민 양성이라는 목표는 바뀌고 있다. 매 학기 정규 상담시간을 두는가 하면, 9학기라는 졸업기준학기도 생겼다. 또 대학순위를 매기거나 교수들의 연구실적을 평가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과거의 사고는 경쟁을 중시하는 현실 앞에서 수정되고 있다.

 

▲재정 부족
재정 부족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독일 대학은 학비가 없다. 60년대의 개혁 후 독일 대학들은 완전무상교육제도를 실시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학은 국가가 재정의 90% 정도를 담당하는 국립대학이다. 게다가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입학정원에 제한이 없다. 뮌헨대의 독문학 전공 학생이 6천여 명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교육 재정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 비율이 높아지고, 동․서독 통일 후 통일 비용으로 독일 전체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서독 지역 대학에 지원할 재원의 상당부분이 동독 지역 대학을 지원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에 독일 정부는 학생 수를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경우 이미 실험적으로 규정 학기 이상 재학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도입했고 다른 주도 도입을 논의 중이다, 베를린 훔볼트대의 경우 올해부터 모든 학과에 입학 정원제을 도입하려고 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

그러나 변화의 가운데에서도 독일 교육만의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 안재원씨(괴팅엔대․고문헌학 박사과정)는 “독일 교육이 위기라고 해도, 교육에서 글쓰기와 토론식 수업을 강조하는 밑바탕에 깔려있는 틀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실용적 응용을 중시하는 미국 대학에 비해 공학, 법학 등에서도 기초적 원리를 중시하는 태도는 독일 대학 경쟁력의 원천이고, 이는 계속 중시될 가치라는 것이다.


비루스 교수는 “미국과 독일은 현실이 많이 다른 만큼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독일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미국이 독일 제도를 미국 실정에 맞게 변화시켰던 것처럼, 빌헬름 훔볼트의 개혁 이념을 세계화된 현실에 맞도록 바꾸어 나가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전통이냐 개혁이냐, 개혁에 대한 찬반의견

독일에서 대학 제도 개혁은 독일에서의 중요한 화두다. 이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콘라드 교수(베를린자유대ㆍ역사학)는  “독일 교육은 위기이며, 과거의 훔볼트 식의 엘리트 중심의 교양 교육은 이제 와서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현재 독일 대학이 위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혁의 용어들과 방법이 미국의 것이기 때문에 생긴 반발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역사학의 경우 독일이라는 폐쇄적인 틀 속에서 연구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 세계화될 필요가 있고, 일찍 직업을 찾으려는 학생들을 위해 학사제도(BA)를 도입하는 것에도 찬성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 대학에서도 경쟁의 원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베를린자유대의 외국인 담당처 기비안 소장의 의견은 다르다. 최근 독일 대학의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학자들보다 관료와 경제 관계자이며 더 이상 교육 재정을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하려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학위의 중간 단계수준으로 볼 수 있는 학사학위의 도입은 결국 학생들을 현재보다 덜 교육시키고 졸업을 시켜주는 제도이고, 이는 결국 독일 전체에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독일 대학의 문제는 일시적인 재정 문제 탓이다. 그는 “위기란 인식은 수십 년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일 뿐, 지금이 진짜 위기라고 부르기 어렵다”며,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에 약 12% 정도의 외국인 학생들이 유학와 있는데, 정말 독일 대학이 위기이고 독일의 학위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수의 학생이 유학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독일 교육이 위기임을 말하는 PISA와 같은 통계 조사들은 각 나라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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