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압박과 국민적 무관심에 압류당한 생존권

최근 잇따른 노동자들의 분신에 대해 손해배상가압류, 비정규직 문제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운데 노동계의 반발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올해 들어 다섯 명의 노동자가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자살을 기도했으며 그 중 세 건은 최근 10여 일 사이에 잇따라 일어나 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지난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손해배상 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했고 9월에는 대한화섬 박동준씨가 “사측은 부당노동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지난달 17일(금)에는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129일 동안 고공 농성하던 한진중공업 김주익씨가 “노무현 정권과 한진중공업은 손해배상가압류를 중지하라”며 크레인에 목을 매 자살했다. 또한 23일(목)과 26일(일)에는 대구 세원테크 공장의 이해남씨와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조합 이용석 전남본부장이 분신자살했다.

 

노동자들이 이처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와 재계, 보수언론이 연합해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결과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참여정부 들어서 정부의 노동탄압은 더욱 심해졌다”며 “올해만 138명의 노동자가 구속됐으며 다섯 차례나 공권력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또 노동계는 ‘기득권 노조’ 등 보수언론의 편파적 보도행태도 비난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고 김주익씨는 유서에서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보수언론을 규탄했다. 민주노동당 서울대 학생위원 김백선씨(전기공학ㆍ96)는 “잇따른 노동자들의 자살은 김대중 정권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해 누적된 분노가 터져 나오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강경대응, 보수언론의 여론 공세로 노조 고립 개혁정권으로 평가되는 참여정부 하에서 국민적 공감대 얻기도 힘들어 재계는 최근 노동자들의 분신사태와 관련해 재계가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잇따른 분신사태에 대해 “노동운동이 격화되면서 일어난 일로 본다”며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노조가 정부를 끌어들여 확대 해결하려고 한 것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노동계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은 “최근 노동자들의 자살은 어떤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절망적인 노동운동 상황에 대한 좌절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한다. 홍 위원은 “7,80년대보다 물리적인 탄압 자체는 줄었으나 손배 가압류 등으로 노동자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며 “노동자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는데 노동 운동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7,80년대에는 탄압에 대한 정당한 항거로 인식돼 국민적 지지와 연대의 가능성이 열려 있던 노동운동이 개혁정권으로 평가되는 참여정부하에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잇따른 노동자들의 자살사태와 관련해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단체들은 연대투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57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탄압 중단 △손배가압류 철회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촉구했다. 범대위는 이날 기자회견과 함께 서울역 광장에서 비상시국농성에 돌입했다. 학내의 학생정치조직도 노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 서울대 학생위원회는 매주 목요일 셔틀버스 앞 선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단위별로 국회 앞 농성장 등에 합류하고 있다.

보름 사이 노동자 3명 분신 민노총 5일(수) 총파업 예고

정부는 현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황급히 대책을 내 놓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분신에 대해 “노동계 지도부가 기획해 지시하는 것 같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영등포 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하는 한편, “손배가압류 남용을 억제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손배가압류에 관한 해결 약속은 노정권 초기부터 계속됐던 것이라 가시적인 해결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노동계의 반발은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발표한 안이한 대책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민주노총은 5일(수)부터 시한부 총파업에 돌입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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