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항해를 이끄는 선장


출판물은 저자만의 창작물로 생각하기 쉬우나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저자의 원고 집필 이외에 다양한 과정이 존재한다. 이번 연재 기획에서는 출판의 각 과정을 살펴 보고 이를 통해 우리 출판문화의 현실과 문제점을 알아본다.

출판물은 한 사회의 정신문화가 축적된 것이다. 이러한 출판 과정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작업이 기획이다. 다른 분야에서 ‘기획’ 개념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출판에서 기획은 아이디어의 창출뿐 아니라 출판물의 내용이나 형태를 결정하는 계획 전반을 의미한다.

 

기획 과정은 크게 기획자의 입안과 출판사의 편집회의로 구성된다. 기획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유서(類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독자층 설정, 작가 발굴 및 선정 등을 담당한다. 이 같은 내용은 설계도로 입안돼 출판사의 편집회의를 통해 세부적인 계획과 예산, 간행 시기, 조판·인쇄 방식 등이 결정된다. 여기까지가 기획에 포함된다.

 

작가가 집필하기도 전에 출판물의 내용과 성격을 거의 확정하는 사람이 기획자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기획자의 신념이나 철학은 출판사의 출판 방향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또 기획자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갇히기 쉬운 작가에게 독자의 요구를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기획자의 철학이 출판사의 출판 방향 결정



그러나 우리 출판 시장은 고유한 신념을 갖고 출판을 기획하기보다는 상업성만을 염두에 두고 비슷한 종류의 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의 빈약한 출판·독서 문화 때문에 아직 독자적인 기획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낮고 책이 문화가 아닌 상품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수요를 창출하는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하고 불법복사 등의 고질적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는 “우리 출판문화는 유행에 따라 아류의 책을 잇달아 출간하고 기획 자체의 완성도보다 유명작가의 ‘글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출판 시장의 왜소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의 중요성을 모르는 문화가 편협한 출판 문화 낳아


이런 출판 환경에서 학술 출판과 같이 시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분야는 살아남기 어렵다. 한기호 소장(한국 출판마케팅연구소)은 “지금 우리나라는 도서관에서 학술서의 기본 부수조차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고 정부, 기업의 지원도 열악하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학술서적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해서는 지식인, 대학생, 일반 대중들의 의식과 관심사를 읽어내는 치밀한 기획으로 시의적절한 원고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유통 구조 역시 독창적인 기획을 저해한다. 출판사에서는 판매를 서점에 위탁하는 위탁판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위탁판매란 책을 생산하는 출판사가 서점이라는 대행업체에 판매 권한을 모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서점과 동등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따라서 출판사는 출판사의 색채를 고려한 기획을 합리적으로 준비하기보다는 시장에 의존하는 서점이 요구하는 신간들을 출판하기에 급급하게 된다.

 


‘푸른역사’의 박혜숙 대표는 “출판 기획자들이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신념을 갖고 기획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출판에서 기획이 바람직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획자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선택의 폭이 넓은 출판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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