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프레스콧(Edward C. Prescott) 교수 강연회 참관기-장용성 교수(경제학부)

경제학부의 초청으로 에드워드 프레스콧 석좌교수(애리조나 주립대 경제학과)가 서울대를 방문했다. 프레스콧은 거시 경제학 및 화폐 금융이론의 개척자로서 핀 키들랜드 교수(카네기멜론대 경제학과)와 2004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으며 동태 거시 경제 모형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과거에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던 정책이 오늘에는 더 이상 최적의 정책이 되지 않아 정부가 정책을 수시로 바꾸는 경우가 흔히 있다. 키들랜드와 프레스콧은 경제 주체들이 정책당국의 이러한 행태를 예상하면 경제가 비효율적인 균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였다. 예를 들어, 자본 축적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재산세를 인하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막상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면 정부는 세금을 걷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만약 민간 경제 주체들이 이러한 정부의 행태를 예상한다면 애초부터 저축을 적게 한다. 프레스콧과 키들랜드는 이러한 비효율적 균형에 빠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재량보다는 준칙을 따를 것을 권장한다. 더 나아가 정부 스스로의 행동을 속박하는 제도를 만들어 민간 경제 주체의 신뢰를 회복할 것을 권장한다. 이들의 연구는 최근 각국의 중앙은행 개혁에 반영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의회에서 정한 물가 상승률 상한을 지키지 못하면 중앙은행 총재가 해임되도록 규정했고, 최근 설립된 EU의 통화정책 담당기구 ECB(European Central Bank)도 준칙주의를 많이 반영하도록 조직했다.

프레스콧과 키들랜드의 가장 큰 공헌이라 할 수 있는 실물경기변동 이론은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연구다. 첫째,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을 분리하여 각각에 적합한 모형을 개발한 반면 실물 경기변동 이론은 두 현상을 하나의 모형으로 설명한다. 둘째, 기존 경기변동 이론이 케인즈의 전통에 입각한 총수요 측면을 강조한 반면 프레스콧과 키들랜드는 공급 부문의 충격을 중시했다. 공급 측 충격의 중요성은 세계 경제가 1970년대 고유가로 인한 불황과 1990년대 IT 호황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셋째, 기존 경기변동 모형이 불황을 일종의 불균형 현상으로 인식하는 데 반해, 프레스콧과 키들랜드는 경기변동을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가계와 기업 등 개별경제 주체가 반응해나가는 균형 과정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시각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흔히 말하는 경기 안정화 정책) 근거를 미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개별경제 주체는 정책변화에 대응하므로 행태 방정식이 일정하다고 가정하는 기존의 정책 효과 분석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프레스콧 교수는 이번 경제학부에서 주최한 서남 초청강좌에서 유럽 사람들이 미국사람들에 비해 일을 적게 하는 이유는 높은 세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평균 노동 공급량이 100 이라면 유럽은 78, 일본은 103, 한국은 113 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한계 세율이 약 40%로서 한 시간 더 일할 때 번 돈의 40%를 세금으로 내는 반면 서유럽 국가들은 추가로 번 돈의 60%를 세금으로 지불하게 되어 근로 의욕이 훨씬 저하된다. 그는 한국은 한계 세율이 아직 33% 로서 양호한 상태지만 복지병을 겪고 있는 유럽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지출을 늘릴 구실을 찾을 수밖에 없는 정부의 속성을 지적했다. 경제의 효율성 지표인 노동성의 경우 미국이 100이라면 유럽은 85, 일본은 72, 한국은 45다. 프레스콧 교수는 조세가 아닌 생산성 향상을 통한 후생 증진을 꾀할 것을 주문하며, 규제 철폐와 생산성 증진에 우호적인 정책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앞으로 20년 후에는 일본, 40년 후에는 미국보다 잘 살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도 피력했다. 강연 후 학생이 질문한 FTA에 관련해서는 “지금껏 개방과 경쟁을 도입해 더 못살게 된 나라는 없는 것 같다”는 다소 원론적인 답을 했다.

강연과 세미나 외에도 이틀간 면담을 통해 프레스콧 교수는 경제학부 교수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학생들과의 집담회에서 그는 기존 이론을 반복․답습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늘 새로운 것을 찾고 탐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경제 현안에 관한 각종 질문이 쏟아지자, “노벨상을 받은 후 제일 힘든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마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줄 것처럼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진솔한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 학생들과의 집담회가 끝난 후 “겁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학생들은 너무 겁이 많아”라고 중얼거린 뒤 “사실 내가 아는 게 얼마 되나?”라며 악동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또 개별 면담에 참여했던 학생과 교수들은 프레스콧 교수가 자신의 생각과 세계에 너무 몰두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호소했다. 일부 대학원생들은 명쾌한 논문에 비해 어눌한 그에게 다소의 실망감 내지 영어 구사의 한계에서 오는 좌절감을 느낀 듯했다. 앞서 가는 생각을 미처 말이 따라가지 못해 대화 내용이 난해하다는 것이 프레스콧 교수를 오랫동안 겪은 동료, 제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므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존의 권위와 관습에 반기를 들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열성 팬도 많지만 그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는 속담에 비추어 본다면 때론 괴팍한 그의 언행도 그리 밉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유로운 사고는 자신의 경제학 이론뿐 아니라 인생에도 나타난다. 그는 아이비리그를 마다하고 조그만 대학의 물리학과를 선택해 부모님을 무척 실망시켰다. 그러나 물리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낙제한 후 경제학으로 관심을 돌려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경제학 명문 MIT 대신 카네기 공대를 선택했다. 이곳에서 마침 신참 조교수로 부임해온 투카스 교수(199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를 만나 평생 학문적 동반자가 된다. 학위를 마친 후 펜실베니아대에서 첫 교편을 잡지만 당시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동료들과 학문적 견해를 달리해 여러 대학을 거쳐 미네소타대로 옮긴 후 30년 가까이 재직하며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했다. 최근에는 경제학과 규모가 작은 애리조나 주립대로 옮긴 일이 학계에서 화제가 됐다. 일련의 결정들에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Life is interesting and full of challe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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