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금) 고려대 문과대 교수 121명이 “인문학의 존립 근거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후 ‘인문학의 위기’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위기론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왔지만 최근들어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인문학 위기론에 대한 교내 인문대 교수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많은 인문대 교수들이 “대학원 진학자 수와 질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명현 교수(철학과)는 “지금의 위기는 인문학 자체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을 학생에게 전하는 과정의 위기”라며 “이는 경제․경영 등 특정 전공자만 우대하는 고용시장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영민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한국사회가 효율성과 실용성만 추구한 결과 인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문학을 경시하는 태도가 만연해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상억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인문학 분야에 지원이 부족한 현실에 책임을 물었다. 그는 “대중과 소통하지 않은 인문학자도 반성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인문학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보장돼야 사회에 응용가능한 문화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인문학자들은 위기를 느낄지 몰라도 인문학 연구와 지원은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있다”며 “학과마다 느끼는 위기감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문대 교수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강재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인문학 연구자뿐 아니라 석․박사 과정생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한 뒤 “교양교육이 많은 인문학 교육은 시간강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므로 이들을 정책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걸 교수(국사학과)는 “학생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몰두할 만한 연구주제와 내용을 마련해야 한다”며 “교양교육에서부터 학생과 교수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교수 대 학생 비율을 줄이고 밀도 있는 강의내용을 통해 학문연구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학부정책과 관련해 인문학 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도 있다. 권영민 교수는 “학부제로 인한 통합교육 실시로 졸업생의 총 이수학점 중 전공학점이 턱없이 낮아진 것에서 보듯 전공분야에 대한 교육이 느슨해졌다”며 “전문적인 인문학 연구자를 육성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퇴색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명현 교수는 “문과와 이과를 구별해 특정 전공에만 치우치는 것이 문제”라며 “폭넓은 기초교양 교육과정과 2개 이상의 전공을 이수하게 하는 방안을 통해 고등지식인을 양성하는 인문학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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