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화학교육과ㆍ03

지난 발언대에는 교육정책에 관한 글이 실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대학입시 시장은 공정한 경쟁을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는 수능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정책이 지표의 객관성을 뭉그러뜨려서 상품의 가치판단이 힘들 뿐 아니라 정보 불균등에 이은 사교육 확대를 초래한다”라는 논지였다.

그러나 최대한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지표, 수능을 이용한다는 것이 꼭 효율적인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에는 객관적 지표로 점수화하기 곤란한 것들이 많이 있다. 리더십, 협동심, 책임감 등의 인성적 측면을 객관적 지표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성만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준 과거로의 역행일 뿐이다. 효율적인 경쟁을 원한다면 원하는 능력을 마음껏 평가할 수 있는 내신이라는 제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상의 논의는 중ㆍ고등학교의 목적을 대학입시에만 두고 생각할 때에나 성립한다는 것이다. 대학입시는 분명 하나의 시장으로 작용한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초ㆍ중등교육을 포함한 공교육 체제 및 고등교육, 사교육 기관까지 교육체제는 분명히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교육의 이념과 관계 없이 이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목적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은 국가에는 시민을, 경제 시스템에는 인적자원을 제공하고 개인에게는 사회적 지위 획득의 통로가 될 뿐 아니라 개인적 성장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 입시로 점철된 중등교육, 또한 시장으로서의 기능만을 생각하는 경제 본위의 교육논리는 이런 많은 가능성 중에서 오로지 인적자원 제공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중등교육을 거쳐 고등교육을 받게 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위해 중등교육을 하나마나 한 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형적 객관성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과연 그들이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사회에서,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 지금은 현재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기보다는 공교육이 과연 무엇을 위한 기관인지, 그 정체성을 들여다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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