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 출범하여 이제 겨우 자리잡아가는 듯하던 헌법재판소가 새삼 소장 임명문제로 법적, 정치적,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헌법 규정을 보면 헌재는 소장을 포함한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임명한다. 헌재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연임이 가능하다(제111조 및 제112조). 또한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어 중요공직자 중에서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는 직과 그렇지 않은 직의 인사청문이 구별되어 있다.
이를 헌재소장 임명절차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재판관 겸 소장 후보자는 먼저 해당 상임위원회(법사위)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 대통령이 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다시 헌재소장 후보자로서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거쳐 국회본회의에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번에 대통령은 전효숙 후보자를 소장으로 지명하여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하였다. 그런데 대통령은 소장의 임기 6년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미 3년간 재임한 바 있는 후보자의 재판관직을 사직케 하고 새로 소장으로 지명하였다. 비록 현직 재판관을 강제로 퇴직시킨 정서상의 잘못이 있을지언정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충실히 밟았더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이나 야당 모두 새로 도입된 인사청문제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생략한 채 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만 개최하다가 새삼 헌법공학(constitutional engineering)적 논쟁에 휩싸이고 말았다.

헌법상 대통령(5년), 국회의원(4년)뿐만 아니라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6년)의 임기는 명시하고 있으면서도 대법원장과 같은 예우를 받는 헌재소장의 임기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는 입법의 미비 또는 흠결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법의 미비를 악용하여 자의적으로 6년 보장을 위한 편법을 동원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법의 미비라기보다는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규정의 취의는 소장의 6년 임기보장보다는 오히려 재판관 중의 1인으로서의 소장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떠나서 헌법재판소의 안정을 위하여 소장의 6년 임기를 헌법에 보장하여야 한다고 본다.

국가최고기관의 하나인 헌재가 소장임명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서는 정치사법적 분쟁의 권위있는 해결장이 되기 어렵다. 대통령이나 국회와 달리 국민적 정당성을 직접 확보하고 있지 아니한 사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결을 통하여 무엇이 정의이며 법인가를 국민 앞에 제시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 구성에서부터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 사법부가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재정립하여야 할 때다. 힘과 완력에 의한 통치시대는 끝내야 한다. 논쟁적 사안이 발생하면 무엇이 법과 원칙에 부합하는가에 따라서 정확하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

성낙인 교수[]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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