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영문학도였다. 애초 그에게 관심이 쏠린 데는 이 점이 한몫 했다. 내가 아는 고통을 그도 알리라는 멋대로의 추측이 호감으로 직행한 것이다. 시집도 내고 소설도 썼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던 그는 서른을 넘기면서 기타를 메고 노래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는 확실히 읽는 것보다 듣는 게 낫다. 속삭이듯 뱉어내는 저음의 노래는 듣는 사람을 우울하거나 울컥하게, 또는 당황하게, 또는 그저 인정하게 만든다. 읊조리는 것이지 노래가 아니라는 비난을 들었음에도 그는 사랑 받았다. 그러나 역시 노래는 시원찮았는지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이 종종 그의 노래에 다른 옷을 입혀주곤 했다.

 

한 여가수의 노래를 통해 그를 알게 된 나는 나중에서야 원곡을 들었다. 원곡을 듣고 역으로 이 여가수에게 은근히 배신감을 느꼈는데, 세련된 피아노 반주와 블루지한 섹소폰이 쓸쓸한 가수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꽤나 근사했지만, 애초 그의 노래가 덤덤하게 그린 격렬한 사랑, 몰아치는 욕망, 애증, 분노, 삶의 답답한 애매함 등이 걸러지고, 달콤하고 씁쓸한 다크 초콜릿 맛이 났던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잘 빠진 멜로디, 무수한 시간의 점들을 채우는 수많은 악기들의 아우성과는 성격이 다르다. 언어가 그리는 이미지, 해답 없는 삶에의 의문들, 그것이 불러오는 감정들이 음들의 시간을 채우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부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넋을 초콜릿으로 발라버리다니. 세련된 편곡은 얼마나 비릿하기만 한지.


'억압으로서의 욕망'을 강요하는 시스템 깨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욕망하는 법 배워야

68년 데뷔당시 삼십 중반이었던 그는 뜨거운 혁명의 열기에 무심한 듯 줄곧 고독과 욕망을 노래해 왔다. 한동안 사라져 뭘 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우연히 그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그는 머리를 빡빡 깎고 어느 수도원에 들어가 선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세상을 등졌냐고 묻는단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하루종일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며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닫고, 텔레비전을 틀지요. 이거야말로 세상을 등지는 겁니다.”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정말 우리는 음악, 사유, 욕망, 아니 삶 자체를 외부의 시스템이 강제하는 대로 누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제공하는 이미지들을 자유라 오인하고 나아가 욕망하고 있지 않은가. 왜 이같이 고독을 강요하는 세상을 군소리 없이 수용하게 되었나. 어쩌다 우리는 ’억압으로서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었나. 이건 정치적 문제다. 그러므로 이런 현대적 삶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그의 노래들 역시 상당히 ’정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스템의 전횡만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처럼 산에 들어가 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은 우리가 고독을 강요하는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것, 그것이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꼼짝없이 포획돼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이미지와 시스템이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이미 포획당한 이미지의 언어로 다시 풀어 이전의 이미지에 귀속시키지 말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레너드 코헨은 말한다. “사람들은 내 음악이 어렵고 모호하다고들 했죠. 하지만 난 어렵고 모호하고자 시작하지 않고, 그저 내가 느낀 것을 가능한 정직하게 쓰는 데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이 내 음악에서 그들 자신의 일부를 느낄 때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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