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김수행 지음, 서울대출판부)

정성진 (경상대 교수ㆍ경제학과)

김수행 교수(경제학부)의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은 20년 전인 1986년 저자가 한신대에 재직할 때 출간한 『경제변동론』(비봉출판사)을 전면 개정하고 대폭 확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온전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던 그 시절, 『경제변동론』이라는 주류경제학의 전공 교과목명으로 출간되었던 그 책은 저자가 런던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에 바탕을 둔 것인데, 이는 당시 일천했던 우리나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연구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주요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교과목의 개설을 고무했던 획기적 저작이었다. 이번에 이를 전면적으로 보완하여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이라는 제 이름을 찾아 출판된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자본론』 완역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서 온축한 연구와 교육의 결실을 녹여낸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저자의 많은 저작 중에서 마스터피스로 평가될 것이며, 당분간 국내외를 통틀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고급과정을 위한 표준적인 교과서와 연구 지침서로 읽힐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변동론』에서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 법칙에 대한 저자 자신 (및 벤 파인)의 고유한 해석 (이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 법칙을 저하 경향과 상승 경향의 모순의 법칙으로 해석한다)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의 공황론과 각종의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불비례설, 과소소비설, 신리카도학파, 우노학파, 근본주의, 장기파동론 등)의 주요 내용과 쟁점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으며, 신용과 금융공황 및 금융화에 관한 최근의 논의, 현대자본주의의 위기와 1997년 한국경제의 위기 및 이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에 관한 비판적 분석,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좌파의 대안 구상 부분을 새롭게 추가했다.

지난 세기 말 이후 가속되고 있는 세계화와 정보화는 주류경제학자들이 기대하듯이 ‘생산성 기적’이 이루어지는 ‘신경제’와 ‘평평한 세계’를 안겨 주기는커녕 세계 도처에서 경제위기와 양극화, 지정학적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이 책에서 재구성하고 있는 공황과 세계화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대안이 여전히 타당함을 보여준다.

평자에 따라서는 이 책의 이론 부분에서 제시되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 법칙에 대한 독자적 해석이 현실 자본주의 공황의 구체적 분석에는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지 않다든지, 이론과 분석 부분에서 견지되고 있는 마르크스적 관점이 대안으로 주장되고 있는 ‘더불어 사는 사회’ 혹은 ‘내수중심 경제’와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등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저자가 지향하는 다양한 ‘열린’ 마르크스주의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무엇보다 소련?동유럽 블록 붕괴 이후 진보진영 대다수가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에 투항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사회민주주의, ‘좌파적’ 신자유주의나 ‘뉴라이트’로 전향하는 와중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 진지를 방어해 온 것만으로도 저자의 기여는 지대한 것이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20년 전과는 달리 오늘은 조야한 국가 폭력이 아니라 시장의 힘과 그 자체 거대한 물질적 권력으로 전화한 지배 담론이 마르크스주의 담론의 재생산과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20년 전에 비해 현실에서는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모순이 폭발적으로 격화되고 있는데, 담론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오히려 계속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 책의 새로운 출판이 20년 전 이 책의 초판과 같은 성공을 재현하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연구와 교육의 새로운 전진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