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수교 하면서 버린 ‘조강지처’

‘차이니즈 타이베이’, ‘타이완ㆍ펑후ㆍ킨먼 그리고 마주(馬祖) 독립관세지역’, ‘중화민국’, ‘대만성(省)’.

 

IOC, WTO, 중화민국과 (이하 대만)수교한 나라들,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이 대만을 지칭할 때 각각 사용하는 이름이다. 대만은 여느 주권국가와는 달리 국제사회에서 통일된 하나의 국호를 갖고 있지 못하다. 대만은 자신이 가진 여러 이름 속에서 국가의 존립과 맞물려 있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이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중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기초한 1국가 2체제(一國兩制) 통일방식을 내세우면서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一中一臺) ▲대만 독립 ▲대만의 유엔 및 주권국가로 구성된 국제기구 가입 등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3불(不)정책’을 대내외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은 “대만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공 당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행사할 수 있는 1국가 2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국의 통일방식에 반대하고 있다. 2000년 집권한 대만 천수이벤 총통은 ‘하나의 기슭(중국)과 하나의 대만(一邊一國)’ 정책을 재확인한 바 있으며, 최근 대만 정계와 사회에서는 국호를 중화민국에서 ‘대만 공화국(Republic of Taiwan)’으로 고치자는 ‘대만 정명(正名)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대만 정부는 71년 탈퇴한 국제연합(UN) 재가입을 추진하는 등 중국의 울타리를 넘어 독립된 주권국가로 승인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대만 문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민감한 외교 사안이다. 중국이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면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고 으름장을 놓자 미국은 “대만 방위를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상해임시정부 이래 전통 맹방(정식 국교는 48년)이었던 ‘중화민국’ 대만과 92년 8월 단교했다. 그러나 한국은 대만 ‘몰래’ 한ㆍ중 수교를 추진해 대만은 한국에 대해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만의 요청을 거부한 채 한ㆍ중 수교의정서에 따라 명동 소재 대만 대사관과 부지(현재의 중국대사관)를 중국에 넘기고, 대만 국호와 국기(청천백일기) 사용을 금지시켰다.

 

1992년 8월 24일 전격 단교 통상, 문화 등
비공식적 차원의 실질적 협력 주력

 

이후 한국과 대만은 93년과 94년 타이베이와 서울에 각각 상주 대표부를 개설했지만 민간 차원의 관계 설정에 따라 대표부 주재원의 신분은 외교관이 아닌 민간인이다. 국교 단절은 양국의 모든 정부간 협정 폐기 등 한ㆍ대만 모두에게 적지 않은 손실을 초래했다. 단교와 함께 취한 국적기의 취항 중단 조치로 방문객들과 3천여 명의 대만 현지 교민에게 경제적 손실과 불편을 겪게 했다. 단교 10년만인 올해 1월에 가까스로 재개된 국적기 취항 또한 한국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정기 노선이 아닌 부정기 전세기를 띄우는 방식으로 허가했다. 그 결과 2002년 현재 양국의 방문객 수는 92년 46만여 명에서 그 절반 수준인 21만여 명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대만과의 관계에 대해 외교부 관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외교통상부 동북아 2과의 대만 담당 직원은 “모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한편 대만 주재 한국 대표부는 “한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대만을 ‘미수교국’이라고 볼 수 없다”며 “대만과는 통상,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공식 차원의 실질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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