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달 교수(사범대·사회교육과)

‘불신을 전제로 한 규격화’로 경직된 대학사회
단대에 본부기능 대폭 이양해 ‘연합대학형 체제’돼야

1946년(丙戌)의 시작 이래 서울대가 60주년을 맞았다. 세차(歲次)에서 60년은 삶의 순환이 한차례 완결되는 주기이며, 새로운 순환으로 옮아감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학 특유의 보수주의에서 벗어나 주변의 변화와 자신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제도와 운영원칙을 정립해야 할 때인지 모른다. 

확실히 서울대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다. 60여년 전의 제조업 시대를 넘어 정보통신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으며, 한국은 이미 세계 열 번째 경제 규모를 오르내리고 있다. 독립과 근대화, 민주화의 구호가 “세계로 세계로”로 바뀌었다. 생각의 흐름 역시 근대에서 탈현대로, 고전과학에서 복잡계 과학으로 이어졌고, 사회의 구성도 이미 다문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무조건적 신뢰에서 검증의 단계로 들어갔다.

그런데 서울대의 운영체제는 아직 과거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조금 과장하면, ‘불신을 전제로 한 통제와 규격화’가 대학운영의 원칙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인 대학 내 인사와 재정, 심지어 학사운영에서도 입학과 선발은 지나치게 묶여 있다. 학내에서도 이런 현상은 되풀이되고 있다: 강한 통제의 원칙으로 짜여진 대학행정, 학내 각 집단의 발전을 서로 견제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장치와 의사결정 과정. “서울대에서는 정말 움직일 수가 없군요”라는 어느 젊은 교수의 말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 서울대는 학문적 의무를 다하면서도, 세태의 변화에 걸맞도록 운영체제를 마련하고,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만일 신뢰에 터한 학문적 창발과 책임, 개방과 반성적 소통체계가 앞에서 열거한 대학공동체 내외의 변화에 내재한 공통분모라면, 대학의 운영체제 역시 수직적·통제적 원칙에서, 수평적 위계 속에 각 구성단위의 자율과 자기조직화를 존중하고 그 발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엄격하게 책임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대학 내 각 구성단위는 개방적 소통의 연계망에 포함되어, 공개적 자기검증에 항상 드러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본부는 집행적 행정기능과 개별적 정책기능을 각 구성단위에 대폭 이양하고, 대신 강력한 감사기능을 지니는 정책 지향의 중심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새로운 체제는 ‘연합대학형 체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수십 마리의 공룡이 서로 얽혀 꼼짝 못하는 거대한 공룡집단을 해체하면 모든 공룡들이 각기 신바람나게 최선을 다하게 할 수 있듯이, 각 단과대학과 학문의 이상을 이 시대에 맞게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학내에서 이 논의를 먼저 시작하는 것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대학이 정부로부터 자율을 획득할 수 있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하여 서울대는 우리 사회와 인류의 문화를 보존하며,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사상과 기술의 상아탑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사회와 역동적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