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의 삶과 음악

가야금 명인 황병기. 그에게는 ‘최초’와 ‘거장’이 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그는 1936년 서울 종로 가회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으로 피난 가 있던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가야금을 접하게 된 후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운다. 이후 가야금을 타면서도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던 그는 1955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1959년 서울대 음대에 국내 최초로 국악과가 창설되자 그는 당시 음대 학장이었던 현제명의 제안으로 국악과 강사직을 맡고 4년간 가야금을 가르친다. 강사직을 그만둔 이후 여러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가야금과의 인연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1964년에 국립국악원 최초 해외 연주였던 일본 순회공연에 가야금 독주자로 초대됐으며, 1965년에는 하와이에서 열린 「금세기 음악 예술제(Festival of Music and Art of This Century)」에 가야금 연주자 겸 작곡가로 초청받아 국내 음악가로서는 최초로 해외에서 독집 음반 「Music From Korea: The Kayagum」을 발매한다. 같은 해에 시애틀, LA,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1974년부터 이화여대 국악과 과장 겸 교수로 초빙돼 2001년 정년까지 교편을 잡는다.

그는 가야금 산조로 최초의 인간문화재로 지정(1968년)된 김윤덕의 제자다. 가야금 산조는 명인의 이름을 딴 각자의 유파가 있다. 현재 전해지는 10여 개의 유파 중 최옥삼류, 김병호류, 강태호류, 성금연류, 김죽파류, 정남희제(制) 황병기류 등 6개의 가야금 산조가 유명하다. ‘정남희제 황병기류’라는 명칭은 황병기의 스승 김윤덕이 황병기에게 자신의 산조가 아닌 정남희의 산조를 가르쳤고, 이 정남희류에 기초를 두고 자신의 유파를 세웠기에 붙이게 된 것이다. 이 명인들 중 황병기가 유일한 생존 명인이다.

그는 가야금 연주가이자 작곡가다. 1962년에는 국내 최초의 현대 가야금 곡  「숲」을 작곡했다. 이화여대에 부임한 1974년, 첫 작곡집 「침향무」를 발표하고 암스테르담에서 초연한다. 기타 대표적 가야금 곡으로는  「춘설」,  「비단길」,  「밤의 소리」 등이 있다. 1973년에는 하길종 감독의 영화 「수절」의 영화음악을 담당해 한국영화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백남준, 윤이상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우했다. 백남준이 아직 한국에서 무명이던 1967년 한국의 한 잡지에 백남준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장문의 글을 실었던 것이 황병기다. 지난해 백남준의 추모공연에서 공연하는 등 두 사람의 사이가 각별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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