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60주년 서울대에 바란다
개교 60주년 서울대에 바란다
  • 대학신문
  • 승인 2006.10.16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신문』은 개교 60주년을 맞아 축하 인사와 서울대에 바라는 점을 담은 학내[]외 인사들의 글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창립 60주년을 축하하며
조 순
경제학부 명예교수
우리의 모교 서울대가 창립된 지 60년이 되었다. 창립 당시, 서울시와 경기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이 대학이 관악으로 한데 모여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지도 벌써 31년이 되었다. 그동안 서울대의 경력은 나라의 그것에 못지않게 험난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해방의 환희와 혼란, 6[]25 동란,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등이 나라가 겪어온 경력의 마디마디에서 이 대학의 졸업생들은 나라의 명운을 주도했고,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 왔다. 참으로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대학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지난날을 자랑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주의는 기대했던만큼 능률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기적이라고 칭찬 받은 산업화는 저성장과 양극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치관은 극도로 혼란하고, 남북과 동서의 분열의 골은 여전히 깊다. 무엇보다도 교육이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대학은 나라를 영도할 만한 지도층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된 반지성적(反知性的)인 기풍(氣風)을 물리칠 지성(知性) 덕성(德性), 감성(感性)이 자라지 않고 있다.

앞날의 임무는 지난날의 그것에 못지않게 무겁고, 갈 길은 여전히 험난하고 멀다. 그동안 해결된 문제보다도 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이 나라는 맞고 있다. 산적한 난제를 누가 해결하는가. 우리 대학이 그 해결의 선두에 서야 한다. 물론, 우리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선도적인 역할 없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나라는 바야흐로 이 대학의 분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사명은 말할 나위도 없이 인재의 양성과 지식의 창출에 있다. 인재를 기른다는 것은 인문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갖춘 인물들을 배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학이 관악으로 왔을 당시, 모두가 합의한 학교의 이념이 이것이었다. 그래서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그리고 자연과학대학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아! 이 세 분야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한마디로 서울대학교가 처음 설정한 건학의 이념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대학이 덜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세 분야의 기초가 약해서는, 길게 보면 다른 ‘응용’ 분야의 지식도 창출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동안 서울대는 대학원중심의 대학이 돼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뿌리는 학부에 있다. 학부 교육이 약한 데서 인재와 학문이 나올 수 없다.

지식의 창출은 대학 전체의 사명이다. 다만 한 가지, 서울대학교의 운영은 한편으로는 시류(時流)에 따라, 어떤 분야가 이상적(異常的)으로 비대해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단과대학이 똑같은 기준에서 똑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이 방식으로 견디어 왔으나, 앞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대학발전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모든 학문 분야를 한꺼번에 발전시킬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발전시키는 기본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계획을 가지자면, 대학에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유능한 총장을 선발하여 그에게 대학의 운영을 일임하고 총장 자리를 오랫동안 보장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정부의 부처가 대학을 통제하는 제도 하에서는 대학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서울대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자
정옥자
인문대 교수[]국사학과
서울대가 개교 60주년을 맞았다. 인생으로 치면 환갑 나이이니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국립대학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소급할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건만, 서울대가 그 역사를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광복 후 성균관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작업을 통하여 성균관의 역사에 편입되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의 제도와 시설물, 교수진과 학생까지 이어받은 서울대가 경성제대를 뚝 떼어버리고 전근대 시대의 대학인 성균관에 맥을 대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서울대 관계자 중에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과연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고, 미군정하에 미군대위가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던 현실에서 그런 발상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는 경성제대의 후신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이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서울대 교사(校舍)를 쓰기 시작한 역사학자들에게 이 문제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고민 끝에 전통시대도 일제 강점기도 끊어버리고 광복 후로 서울대 교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핏 민감한 부분은 해결된 것 같지만 사실 서울대의 정체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하여 서울대의 정체성부터 바로 세워야하지 않겠느냐는 공론이 생겨났다.
‘민족의 대학’이니 ‘겨레와 함께 미래로’등의 표어는 표어일 뿐 서울대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대 법인화 문제나 재정 문제 등은 방법론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대의 목표는 무엇이며 과연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서울대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서울대가 똑똑한 인재를 많이 키워 사회에 배출해 낸 공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60년의 서울대 역사만큼이나 현대사에서 서울대가 차지해 온 비중도 크다. 그럼에도 서울대 폐지론이 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건전치 못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재탱크의 역할을 한 만큼 서울대 출신이 누려온 특권의 그림자도 짙다.

이런 문제는 머리만 좋고 지식은 가득 채워 넣었지만 가슴이 없는 도구적 지식인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서울대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을 듯싶다. 서울대는 우선 정체성을 세워 지식인의 국가적[]사회적 책무에 대한 열정을 갖추고 지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인재를 키워내야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섬기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현택환
공대 교수[]화학생물공학부
서울대가 개교 60주년을 맞이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서울대에서 보낸 지난 16년 을 돌이켜 보면서, 서울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자 한다. 자연대 화학과 학사[]석사과정에서 은사님들께 배운 다양한 지식들이 현재 활발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1997년 9월 교수로 임용된 후에는 공과대학과 화학생물공학부의 여러 교수님들의 배려와 도움 덕분에, 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 대학원생들이 열심히 연구한 덕분에 짧은 시간에 많은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나 자신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사랑하는 여러 후배들에게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로 각자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서울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내가 지난 9년간 교수로서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우리 서울대 학생들이 세계 어느 대학생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다, 외국에 있는 대가들을 만나면 자주 이 사실을 자랑한다.

둘째는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라는 것이다. 나는 자주 우리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을 국가대표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독려한다. 우리 서울대인들은 분명 누구보다 많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가진 달란트를 묻어 두거나,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사용하여야 하며, 또한 섬기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셋째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꾸어 가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학기 한 모임에서 여러 저명한 우리 학부 동문들께서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들 중 공통적인 것들이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잘 표현하는 것을 연마하라는 것과 외국어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많은 후배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서울대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회발전 뒤편의 약자들을 잊지 말아야
신행범
시설관리노동조합 위원장

모든 서울대 가족들과 더불어 개교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 나라의 지성을 선도해온 서울대학교의 부단한 노력에 전 조합원을 대표하여 찬사의 인사를 보낸다.

서울대가 달려온 60년의 역사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온갖 굴곡을 대변하는 것임을 새삼 되새겨 본다. 조합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또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그 굴곡의 역사 속에 담긴 우리 노동자, 서민들의 땀과 눈물도 아울러 되새겨 본다. 그런 점에서 당당하게 학교의 일원으로 이렇게 축하의 인사를 보낼 수 있게 된 오늘의 감회가 새롭다.

6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서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일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변하지 않는 애정의 시선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서울대학교는 단순히 지성과 이론의 요람이 아니라 언제나 든든한 행동과 실천의 동반자요 지지자였음을 기억한다. 불의와 불평등에 대해 언제나 앞장서서 저항하는 전통 속에 서울대의 진정한 권위가 세워졌음을 또한 기억한다.
나를 비롯한 300여 조합원들은 서울대학교를 지키고 청소하는 경비원, 미화원들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조합을 만들고 지켜오는 일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서울대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때때로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고, 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자들이 믿어온 한 가지는 서울대의 교직원과 학생들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우리 힘없는 노동자들과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강하게 연대할 지성인이라는 사실이다.

서울대의 교직원과 학생, 그리고 모든 가족들에게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것이다. 60년의 세월, 이제 이 나라와 사회는 서울대와 더불어 부단히 발전했다. 그러나 그 발전의 뒤편에 숨겨진 가난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자신의 피와 땀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지 말아줄 것을 당부 드리고자 한다. 서울대 지성의 예민한 촉수가 사회의 부당함과 불평등이 갈수록 오히려 커져갔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지적해줄 것을 당부드린다.
다시 한번 서울대 개교 60주년을 축하하면서 서울대가 최고의 지성과 깊은 사랑이 공존하는 곳, 온당한 권위와 젊음의 이상이 공존하는 곳,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이해와 애정 속에 공존하는 곳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조합원을 대표해 인사 올린다.

세상의 소금 역할 할 수 있기를
배진수
공무원직장협의회 회장
지금부터 60년 전인 해방 이듬해, 1946년은 대홍수, 콜레라, 흉년, 신탁통치 등으로 온 백성들이 기아와 병마 그리고 각종 시위와 폭동으로 심히 암울한 시기였다. “정부여! 쌀을 달라”, “굶어 죽든 병들어 죽든 죽기는 매일반이다”라는 구호가 말해주듯이 암울한 그 시기에 국립종합대학안이 확정[]공포되고 서울대가 정식으로 개교하였다.

서울대는 1950년대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였고, 60~70년대의 배고픔 속에서 경제부흥을 이룩했으며, 80~90년대 독재[]반민주에 부단히 싸워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지난 60년 동안 학사 18만명, 석사 6만4천명, 박사 1만6천명의 인재들을 배출하여,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노동[]문화 등 각 방면의 앨리트로 큰 역할을 담당하게 했으며,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1위국으로 웅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렇게 서울대는 “겨레와 함께 미래로 60년”을 힘차게 달려왔다. 실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기쁘고 벅찬 가슴으로 60년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꼬리표만 달려 있지는 않다. 공룡같은 조직에 안주하는 엘리트 집단, 우물안 개구리, 서울대 폐교론 등……. 아직도 겨레와 국가는 서울대에 바라는 것이 많다. 나는 이것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본다. 

먼저, 암울한 시기에 희망을 교육에서 찾고자 했던 선각자(先覺者) 처럼, 우리의 밝은 미래도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그 교육은 정직하고 근면하고 반성할 줄 아는 교육이어야 한다. 정직은 “거짓과 허식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다”이며, 근면은 “부지런하게 힘씀”이며, 반성은 “과거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선악[]가부를 고찰함” 이다. 우리는 우리의 교육이 부끄럼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양심에 기초한 지식인조차 신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를 신영복 교수님의 ‘하방연대’에서 찾고 싶다. “물은 항상 아래로 흐르듯, 낮은 곳을 향하면 신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서울대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금은 세상이 더럽혀지거나 썩는 것을 방지한다.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비아냥거리기보다는 용기있는 지성으로 청량한 얼음과 방부제의 역할을 하기 바란다.

이제는 앞만 보고 뛰지 말고, 뒤도, 옆도 돌아보면서 걸어가길 바란다. 국민들의 빈 가슴을 채워주면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걸어가기를 바란다. 지나온 60년을 명석한 머리로 살아왔다면, 앞으로 60년은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대학교 60년, 진리와 세월의 위엄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과
세계의 여러 대학들을 보면, 대체로 손꼽는 대학은 오래된 대학들이다. 그 중에는 1000년이 넘거나 그에 가까운 대학도 있다. 국가로서의 역사가 짧은 미국을 보건대, 짧은 역사 가운데에도 400년 가까이 되는 대학이 있고, 유수한 대학으로 손꼽히는 대학은 최소한 100년에서 150년은 된 대학들이다. 사람이 세우는 제도가 대체로 그러하지만, 이것은 교육과 연구의 기구가 일정한 자리에 서려고 하면 그만큼의 긴 세월의 가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나의 틀을 세우고 그것을 보완하여 사람의 필요에 알맞은 것이 되게 하는 데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해진 틀만을 고수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틀을 이어 나가되, 그것을 동시에 끊임없이 넓히고 고쳐나가는 일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그 틀은 사람의 필요와 소망의 모든 것을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이 된다.

단절과 격변이 끊이지 않았던 한국의 현대사에서 60년이란 다른 나라의 세월의 두 배도 더 되는 세월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가 60주년을 맞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러를 만한 연륜을 쌓았다는 것을 말한다. 숙연한 마음으로 생각을 깊이 하여 돌이켜 볼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의 서울대학의 위치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의 그 특수한 위치로 그러하다는 뜻에 그칠 수 있다. 위치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에서 보다 넓고 깊이 있는 학문의 기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서울대 문리과대학에 입학한 것은 6[]25 전쟁 직후였다. 모든 기준에 있어서 지금에 비교할 만한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이 미비한 가운데에도, 학문의 의미와 그것의 자유로운 추구에 대한 느낌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학생들에게 두고두고 삶과 마음의 습관으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인 확장과 충실화를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는 제도는 사람의 삶에 번거로움을 더해줄 뿐이다. 대학은 학생의 교육과 학문 그리고 나라와 인류에 봉사하는 기구다. 모든 공공 기구 가운데 대학만큼 사리(私利)가 아니라 공공 봉사를 그 스스로의 사명으로 정의하는 기구는 달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봉사의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대학 교육의 참뜻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대학이 무엇보다도 진리에 봉사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모토는 Veritas(진리)다. 진리는 서울대라는 학문의 기구는 물론 사람과 나라를 초월한다. 진리에의 헌신이 대학으로 하여금 편벽된 이해관계와 독단을 넘어서 더욱 깊이 사람과 나라에 봉사할 수 있게 하고 대학이 대학을 넘어서는 큰 제도가 되게 한다. 이제 60년 세월의 온축, 그리고 그 위엄을 딛고 서게 된 서울대가 우리 사회의 진리의 바탕을 더욱 튼튼하게 다져 갈 것을 기대한다.

우선 대학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이돈희
교육학과 명예교수
서울대가 한때는 세계의 대학들 중에 700등 안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별로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그 등위가 크게 향상되어 마치 세계적 경쟁력을 충분히 지닌 대학인 것처럼 이따금씩 언론에 보도된다. 경쟁력의 지표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서울대가 이제 긴장의 눈을 뜨고 등위의 개선에 노력한다면, 짧은 기간 내에 충분히 앞선 대학들을 제치고 올라설 잠재력은 본래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계적 등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울대의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한 지 3년을 넘긴 지금 나는 서울대의 교육과 연구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 본다. 적어도 3년 전까지의 분위기라면 언론에 보도된 등위라는 것이 별로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가 어렵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200개 대학 중에 63위에 올랐다는 것, 종전의 93위에서 30계단 뛰어 올랐다고 하는 보도에 나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3년 동안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바뀐 것인가, 아니면 평가기관이 별로 의미 없는 부문의 통계적 수치를 피상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하고 있는 강의실과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대낮부터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던 시기는 3년보다는 좀 오래 된 것 같다. 점심 때가 되면 강의실 주변에 오토바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종횡무진으로 달린다. 알고 보니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주문한 자장면 등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라고 한다. 강의실과 연구실의 바로 앞에서 팩을 차면서 떠들어대는 학생들을 단속하는 교수들의 고함소리가 자주 들린다. 단속하는 그 순간은 잠시 조용해질 뿐이다. 보이는 대로라면 대학인지 놀이터인지가 구별되지 않는다. 만약에 우리의 캠퍼스에 이런 분위기가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면, 그렇게 대단한 세계적 등위는 그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세계적으로 일류급이라고 하는 대학의 교정에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카데미즘의 준엄한 분위기가 방문자를 압도한다. 물론 서울대의 교정이 본래부터 그렇게 어지러웠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격동기를 겪는 동안에 해이해졌고 대학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인가를 차분히 생각해 볼 겨를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등위상의 지표를 개선하는 것이나 ‘학문의 전당’이니 ‘민족의 대학’이니 하는 화려한 구호를 내거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대학은 대학이어야 한다. 서울대 개교 60년, 이제 그 명성과 잠재력에 걸맞는 본연의 모습을 확실히 회복하여 나라와 겨레의 자랑이 되고 믿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학생사회도 변해야

단과대 학생회장연석회의 공동의장
이재호
디자인학부[]04
2004년도에 입학해서 이제 겨우 3년차 학부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개교 60주년은 아버지, 혹은 할아버님의 연세가 될 정도의 60이라는 숫자만큼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개교기념일인 10월 15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없어진 휴강일을 아쉬워하며 가볍게 넘기기에는 분명 허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불과 몇 개월간의 학생회 활동을 통해 바라 본 학생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떠난 그 곳 얘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 정도로 학생사회와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차갑게만 느껴진다.

태어난 날, 생일을 축하하듯. 상징성을 부여받은 날은, 그 날 자체만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교기념일을 기점으로 학생사회에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 흐름에 맞추어 변해야 하는 학생사회의 상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취업공부를 하는 것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요구하는 사회변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준비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그런 준비를 위한 공간과 환경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오늘날 학생사회가 크게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다양한 사회 변화 속에 60년, 그리고 사회 변화 속에 서울대, 서울대 학생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생각해본다. 획일화된 이념을 극복하고 다양한 이념의 자유를 얻기 위해 활동했던 과거 학생사회와 세계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는 오늘날 학생사회의 역할 차이를 인식하고 오늘에 맞는 새로운 제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개교 60주년, 자신의 위치에서 학생사회의 변화와 의미를 찾아보고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학생사회상에 대한 제안을 생각해보는 것도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여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명성에 걸맞는 책임을

 최진혜
제약학과[]03
등굣길에 보이는 60주년 기념 로고와 조형물이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임을 알 려준다. 이 글을 쓰면서 60이라는 숫자보다는 60년째 명성을 이어온 나의 모교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 자체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서울대 학우들을 모두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다양한 실력은 어디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신한다. 특히 학습 능력과 응용력, 그리고 목표를 향한 집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철없던 새내기 시절 주변 친구들에 대한 괜한 열등감에 힘든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학외에서도 서울대는 특별하게 받아들여진다. 서울대 학생이라면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갈 때,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릴 때 주위를 의식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어느 학교에 다니나 물어봐 주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가 입시 정책에 주는 영향만 고려해 보아도 대한민국에서 서울대의 의미는 단순한 대학교 이상이라 할 만하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가진 잠재력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기에 ‘서울대생’은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며 책임의 주체이기도 하다. 다소 소소한 학내 문제들도 걸핏하면 미디어를 통해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 올해 있었던 학생회의 대소사들 중 대부분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거나 언론사의 관심 하에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사회에서 서울대가 가지는 명성과 책임감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4학년이 되고서야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추모제에 처음 참석하였고, 민주화 열사 선배님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서야 서울대학교의 명성이 60주년이라는 수치가 아닌, 선배들의 정신과 삶이 이룬 것임을 알게 되었다. 최고의 학벌, 보장된 미래가 있었음에도 늘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다수 민중들의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모순과 싸우려 했던 선배님들의 고결한 양심과 사회적 책임감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웠다. 개교 60주년을 맞아 지난 대학 생활과 선배들과 민중들이 함께 일구어 온 서울대의 참 역사를 자랑스럽게 되새겨 본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는 서울대의 앞날을 고민하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져 본다.

책임과 자괴감부터
김남조
시인
대학은 그 나라의 심장이다.
우리가 식민지의 사슬을 끊고 독립국 반열에 복귀하여 나라를 세워 오늘에 이른 60여 년을 되돌아 볼 때 그 성패는 과연 어떠한가.
정부각료 및 국가전반의 요직에 사실상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이 임용되어 왔고 수백의 대학이 설립되면서 서울대 출신의 교수가 절대 다수 봉직해 온 점을 감안할 때, 오늘의 정치, 경제, 교육, 과학, 문화 등의 실패 부분에 참담하게도 서울대의 무거운 책임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물론 민의불급이던 권부의 독선 탓이 적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가치관의 모색이 결핍된 자리에 치솟은 경쟁논리와 효율성 제고가 처음엔 철학 분야를 쇠퇴케 하더니 전인교육을 거부한 일등주의와 성공사례, 취업 지름길 등의 관심이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사이 오늘은 인문학의 몰락현상이 심각하게 지적되기에 이르렀다. 성적관리에 있어서도 기계적인 상대평가가 교수와 학생 사이, 학생 상호간의 신의와 우정을 손상시켜 왔으며, 교수 이직의 문제도 관직에 영입되어 강단을 떠나는 이들 중 서울대 교수의 비율이 높은 줄 알고 있다.

그리고, 가슴 안에 뜨겁게 넘쳐야 할 서정성과 순수감성이 고갈되어가는 거기에 엘리트 의식과 독단적 오만이 유해한 식물로 번식하진 않았는가. 도저히 시간을 쪼갤 수 없는 현실에서도 의학도가 틈내어 악기를 배우고 법학도가 시를 애송하며 건축전공이면서 식물도본에 매료되는 모습이란다면 정녕 아름답고 인간적이리라.

오늘 우리는 열린 세계에서 살아간다. 좋은 한국인이면서 손색없는 세계인의 자질을 닦고 모교와 조국을 사랑하되 위험에 노출된 지구촌의 난제를 함께 풀어 가면서 전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역군에 흔쾌히 가담해야 한다.

대학은 정부나 군대 못지않게 이 사회의 중추다. 이때 그 중요성이 바르게 인식되고 사회적 책임과 전인교육이 더 확충되어야만 그 대학은 생동하는 참 대학이라 할 것이다.
우리 서울대학교여

반드시 그러한 인격과  덕성에로 다가서자.

열린 대학으로의 한걸음
임광수
총동창회 회장

모교 개교 60주년을 30만 서울대 동문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하며 모교 교수, 재학생, 그리고 동문들이 단합된 마음으로 애교심을 발휘해 앞으로 모교가 세계 속의 초일류대학으로 발전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모교는 60년 성상을 거쳐오는 동안 이 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함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선[]후배 총장, 교직원, 재학생과 동문들이 갖가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훌륭한 인재를 육성해 달라는 국민적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 속의 명문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학의 수준이 그 나라의 국력을 나타내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선 외형적으로 12번째 경제국가인 한국 최고 대학인 모교의 세계 대학 순위가 더욱 상승해 우리나라의 위상을 만방에 더 잘 나타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신임 총장은 모교가 감동을 주며 인정받는 가치 있는 대학이 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대인들이 국민과 더불어 더욱 나누고 베풀며 협동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성공적 삶을 살아가는 풍토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제도를 만들고, 기초과학에도 더욱 중점을 두기 바란다.
이와 같은 노력이 쌓일 때 서울대인에 대한 사회 일각의 그릇된 편견이 불식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담보하기 위한 학교운영의 자율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인화 등 학교운영의 제도적 변화를 포함한 단호한 대처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실행해야 할 것이다. 도쿄대 등 타대학의 예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다.
또한 국제화에 충실한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 해외 대학과의 교류는 물론 많은 우수한 외국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열린 대학으로 더 발전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하루 빨리 모교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모교와 동창회가 재학생과 졸업생을 공동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유기적으로 관리해 나감으로써 발전적 상생관계를 이루어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겪은 여러 가지 사태를 통해 적지 않은 동문들이 모교의 장래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개교 60주년을 축하하며,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