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하는 민중 생존권 보장을 위해

보름 사이에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목을 매고, 투신하고, 분신하면서 자신의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민주노총에서는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와 같은 자살이 반노동자적 노동정책에 의한 것임을 천명하고, 이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오는 12일에 전면 총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런데 한국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노총이 최근의 사태에 대하여 강력한 총파업을 선언했음에도 그에 대한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보수언론들이 조용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진보운동을 하는 진영에서조차도 별반 긴장하는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이러한 조용함의 배경에는 총파업-일각에서 관성적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의 성사나 승리여부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있을 수도 있고, 최근 민주노총이 보이는 조직주의(corporatism)적 경향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것 같다. 이번 총파업투쟁의 성공전망이 불투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한계를 지적하며 가만히 있기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현실이 슬프도록 열악하다. 노동관계법상에 보장된 단체협약내용이라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사업장이 몇 개나 될까? 가까운 52번 버스의 한남운수도 민주노조건설을 위해 노력하던 한 노동자가 부당해고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거듭되는 자살에 대해 고작 ‘계획적인 것이 아니냐’는 소리나 늘어놓고, ‘알아서 해 줄테니 가만있으라’는 말밖에 못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힘있는 자’들의 수준이라면, 이 척박한 환경에서 이만큼을 얻어내기 위해서도 우리는 전력투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아픔을 느끼고, 여기에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고 이번 파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애써야만 한다. 두 말하면 잔소리일-그러나 무시당하고 있는-민중 생존권의 보장을 위하여, 더불어 너무나 천박한 우리네 ‘있는 분’들의 수준 향상을 위하여서도.

 

 이용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위원장 (법학부ㆍ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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