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2000년대 작가 - 시인 황병승

“한국 시는 황병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의 시는 경박한 아류일 뿐이다.” 『여장남자 시코쿠』의 시인 황병승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황병승은 지금껏 한국 시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의 장을 연 혁명가라는 것이다.

“일본 소설과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실험 록(experimental rock)을 즐겨 듣는다”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실험 록은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고 그 형식이 다양해 콜라주와 같은 느낌을 준다. 황병승은 “대중적인 문화보다는 형식이 자유롭고 다양한 코드가 뒤섞인 문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기호(嗜好)처럼 그의 시에는 비주류적인 것,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묻어난다. 평론가들은 황병승의 시를 ‘혼종성’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삼기도 하고,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시코쿠’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며, 일본어를 자주 시어로 사용하는 그의 시 세계는 불분명하고 몽환적이다. 

‘시코쿠가 기차에 오르고/ 잘 가 나를 잊지 말아라/ 시코쿠였던 자가 역에 남아 손을 흔든다.’ (「시코쿠」중)

‘시코쿠’와 ‘시코쿠였던 자’가 등장하는 이 시에서처럼 『여장남자 시코쿠』에는 주체가 분열된 화자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는 다양한 자아의 목소리를 시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를 쓰다보면 문득 자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감각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떤 문장은 백 번, 이백 번씩 곱씹기도 한다는 그는 “시 쓰기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만큼 쾌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시를 왜 쓰냐’는 ‘뻔한’ 질문에 그는 “시는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며 “앞으로 어떤 시를 쓸 것이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보통 어떻게 놀 건지 예정하고 노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마음대로 놀겠다는 시인의 자유분방함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고리타분한 백성들이여, 기절하라! 단 몇 초만이라도’라는 시인의 절규에 귀 기울이면 영원히 자아의 감옥을 탈출 중인 시적 화자의 새 발성이 들려올 것”이라는 김혜순 시인의 평처럼, 그의 시를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한국 시의 전위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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