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구조조정의 필요성

학문후속세대의 위기에 대한 종래의 관심은 주로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나 학문후속세대의 불안정한 지위 개선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에는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기관인 대학원의 책임도 부인할 수 없다. 현 대학원 체제의 변화 없이 학문후속세대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10월말 열린 교수협의회 대토론회에서 인문대 학장 이태수 교수(철학과)는 “현재 대학원은 학부과정의 전공분류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학부과정에 ‘얹혀 있는 형국’”이라며 “고전적 전공 분류 등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 탄력적인 제도 운영과 교육과정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각 전공별 대학원 교육과정은 내용과 구조, 운영방식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전공분야의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사회대 석사과정의 한 학생은 “현재 모집 시기를 전기, 후기로 나누어 모집하고 있지만 후기 모집의 경우 커리큘럼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며 “대학원 생활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의 위상의 차별화도 절실하다. 보건대학원, 행정대학원, 환경대학원, 국제대학원 등 네 개의 전문대학원을 두고 있는 서울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에서는 학술학위과정(일반대학원)과 전문학위과정(전문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각각 학문후속세대와 우수한 고급 실무책임자 양성이라는 차별화된 본래 취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원장 백충현 교수는 “학술학위와 전문학위로 대별되는 학위 제도와 대학별, 학과별로 지정돼 있는 학위 명칭들을 목표와 내용, 수요에 걸맞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문 연구의 세대교체를 고려하는 등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 채택된 석ㆍ박사통합과정도 본래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석ㆍ박사통합과정은 박사학위를 최종 목표로 하는 학생이 석사논문 작성이나 박사과정 입학시험 준비 등으로 연구의 연속성이 저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지만 교육과정과 학점 이수규정 면에서 이전의 관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러한 대학원 운영의 유연성 부족으로 인해 대학원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학문후속세대의 내적 위기를 가져온 원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재 대학원의 역할이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전문인력 배출 사이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성급한 대학원 개편은 위험하다는 견해도 있다. 의ㆍ치학 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인한 논란은 그 대표적 예다. ‘기초과학이 튼튼한 의사 배출’을 목표로 2005년 도입될 예정인 의․치학 전문대학원은 아직 그 상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부과정에서의 의대 선호현상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류왕식 교수(연세대ㆍ자연과학부)는 “의․치학 전문대학원이 설립되면 이공계 대학원으로 진학할 인재들이 의ㆍ치학 전문대학원으로 몰려 이공계 대학원의 공동화 현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이는 곧 이공계열 학문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문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 학생을 확보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문후속세대의 미래와 그들의 진로를 위해 유연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원의 자구 노력 역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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