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희(인문대 교수·독어독문학과)

어느 국회의원이 서울대 논술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자신도 이해를 못하겠더라고 성토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의원 스스로 논술문제를 푸는 광경을 상상했었다. 그때 떠오른 문제. 
‘서울대 논술문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음의 조건들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논리적으로 서술하라. [선발기준의 객관성 / 창의적 인재 선발 / 사교육비 및 공교육 붕괴 문제]’
그런데 정작 이 문제를 풀어봐야 할 사람은 그 의원이 아니라 서울대 교수인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수험생이 되어 문제를 풀어보기 시작했다.

일단 선발 기준의 객관성과 관련해서 보자면 [수능, 내신, 논술, 면접] 중에서 수능이 가장 객관성이 높은 것 같았다. 내신, 논술, 면접은 선생님이나 시험관의 주관, 또는 지역 간·학교 간의 편차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니 수능 위주로 가자! 이렇게 쓰고 있는 동안 신문기사의 제목 몇 개가 떠올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암기 위주의 수능, 단답형 사고를 키운다!’, ‘창의성 있는 아이들, 대학이 외면!’…… 아무래도 글의 초점을 옮겨야 할 것 같았다.

당장은 효과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창의적 사고를 요하는 논술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출제하면 고등학교의 교육방식도 그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는 ‘겨레와 함께 미래로’라는 구절을 그 밑에 적어 넣었다. 뭔가 뿌듯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서울대 논술시험이 사교육 시장을 부추긴다고 개탄하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얼굴이 빨개진 나는 지금까지 쓴 답안을 지우고 사교육비의 폐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써내려갔다. 서울대 시험이 어려우면 사교육 시장은 번성하고, 공교육은 망한다. 그러니 무조건 쉽게 내자. 누구나 풀 수 있도록. 그런데 누구나 풀 수 있게 내서 누구나 풀면 누구를 뽑는단 말인가. 글과 생각이 동시에 갈피를 잃으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습관이 되살아났다. 볼펜 돌리기.

문득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볼펜 돌리기를 멈추고 이렇게 썼다.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는 고등학교로 돌려라. 다시 말해 내신을 강화하는 것이다. 내신을 강화하면 공교육 붕괴의 문제와 지역불균형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서울대는 무엇을 하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뭔가 이상했다. 서울대 논술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서울대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것을 답으로 내놓다니! 이쯤에서 나의 오류가 분명해졌다. 통합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를 놓고서도 볼펜 돌리기를 잘하는 사지선다형 세대의 한계만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보다 큰 문제는 서울대 논술 문제를 둘러싼 담론의 상당수가 사지선다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통합적 사고가 절실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주체가 되더라도 서울대 논술에 관한 완벽한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 해보다가 안된다 싶으면 바로 저것으로 넘어가는 조급함은 버렸으면 좋겠다. 어떤 방식이든 적어도 10년 이상은 유지되면서 개선되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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