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영 (미학과·01)

1.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을 모기」는 지난해 가을, 귀 주변을 맴돌던 모기의 암상스런 날갯짓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2.

얼마 전, 한 요절한 영화인의 1주기 추모영상제에 다녀왔다. 그의 필체임이 분명한 ‘자본가 똥구멍에, 선인장 선인장’이라는 문구가 현란하게 출몰하는 그의 1분짜리 초기 실험작을 보자, 가슴 한 편이 딱딱하게 굳어왔다. 나는 그 선배와 한때 그의 전투적인 필체에 대해 농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아마도 바로 그 선배였던 것 같다. 학교를 구성하는 사람이 학생과 선생님뿐만은 아니라고 내게 말해준 사람이.

3.

굳어졌던 가슴은,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난 후 대학로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중에 스르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였다. ‘우리가 당장 내일 영국군을 몰아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누군가가 그 감독에게 심어놓은 메시지는 영화 속에서 그렇게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순간을 타고 흘러갔다. 물론, 왜 그때 내 가슴 한 편이 녹기 시작했는지 분명한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4.

이유를 짚어낼 수는 없지만,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명료한 메시지이든,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든, 어쩐지 내가 언젠가 다른 세계에서 무엇이라고 말해야만 한다고 언질을 주고 있는 것만 같은 순간들.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을 켜켜이 쌓아둔 채, 언젠가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라고만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만다. 과연 잘한 짓일까.

5.

내가 계속 글을 써도 되겠냐는 어리석은 내 질문에, 현명한 친구들이 진심으로 애정 어린 답변들을 해주었다. 몇 안 되는 그 친구들이 사무치게 고맙다. 졸작들을 읽어주신 국문과 노지승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에게 상금의 일부를 나눠 줄 생각이다. 거짓말이지만.

6.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일본식 돈까스집 2층에 앉아 공중전화부스를 보고 있다. 그 부스 위에 떨어진 은행들을. 그의 동료들은 이미 타이어 바퀴에, 큰 포댓자루로 향하는 집게에 그들의 운명을 맡겼다. 살아남은 은행들로부터 한 줄기 바람이 내게 닿는다.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겨울을 나게 될 은행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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