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으레 외가가 있던 부산이라 답한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캐묻기 전에, 깔끔한 서울말로 “고향이라 해도, 고등학교부턴 서울서 다녔으니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어요.” 라고 재빨리 덧붙인다.

내가 실제로 나고 자란 곳은 마산이다. 그래, 마산이라 하면 다들 궁금해 할, 저 유명한 마산앞바다를 코앞에 둔 동네였다. 죽은 이들이 떠도는 곳. 생(生)의 남은 에너지가 수면 위에서 흔들리는 곳.

사람이 죽으면 바다로 간다는 것은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인구 밀집지에 인접한 해저에는 물에 녹은 탄소가 내는, 사이다 거품 같은 망자(亡者)의 잔여물을 부글부글 올려 내는 기점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은 물 속으로 꽤 깊이 들어가야 거품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심이 얕고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 바닷가에 커다란 덩어리 같은 잔여물이 떠다니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런 밀집된 잔여 에너지가 역시 가까이에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와 반응하여 림보를 만들어낸다. 가포에서 돝섬에 이르는 마산앞바다는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림보일 뿐 아니라, 그 상태가 안정적이고 선명도가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재미있었다. 어른들은 놀이터에 가만히 있으라 하셨지만, 우리는 꽃삽이며 플라스틱 양동이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서 바다 근처로 놀러 가곤 했다. 그리고 철조망 앞에 쭈그리고 앉아 수면에 떠오르는 사람들 얼굴을 세어 보았다. 몇 명이나 보이나 서로 내기를 하기도 했다. 기껏해야 예닐곱 살 난 아이들에게 보이는 얼굴이래야 몇이나 되었겠는가. 짓궂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퍼온 흙을 바다에 뿌리거나, 돌멩이로 괜히 물수제비를 띄웠다. 저 먼 어딘가를 보듯 멍하니 섰다가, 아끼던 공깃돌이나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살짝 꺾어온 꽃, 편지 따위를 던져 넣는 아이들도 있었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잡동사니들을 이틀에 한 번씩 건져내는 일은 시 환경위생과의 몫이었다.) 하지만 물은 고작 해야 물일 뿐이었고, 우리는 곧 한산한 바다에 싫증을 내며 놀이터로 돌아가, 흙주먹밥과 신랑각시와 미끄럼틀 정글이 있는 세상에서 해가 기울도록 놀았다.

아무리 교과서에 나오는 자연현상이라 해도, 출렁이는 청록색 물 위로 기억 속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을 실제로 처음 마주하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에 여덟아홉은 알고 지내던 사람의 얼굴을 마산앞바다에서 또렷이 보았던 때라 답하리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첫 죽음은 첫 사랑보다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마치 제철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다음 참외를 먹으면 싱겁게 느껴지듯이, 우리는 첫 죽음을 맞고 나서야 그것이 여생에 그림자처럼 드리우리라는 사실을, 유별난 세제 혜택을 받으며 복지곂??분야 전국 1위인 우수지자체의 시민으로 자라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제일 처음 본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 학년 위 여학생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따라 달리던 여자아이 둘이 넘어졌든가 미끄러졌든가 하여 물에 빠졌다. ‘지리적 특성’덕분에 사체를 건져내기 전부터 사망 사고임이 알려졌다. 매년 철책을 설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던 인적 뜸한 자리였다.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슬금슬금 바닷가로 나갔고, 웅성대며 모여선 사람들 사이로 마산앞바다를 빼꼼 내다보았다. 아이는 그곳에서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605호 아주머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낯익은 이웃 어른들이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몇은 고개를 돌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 한 명 한 명이 그 순간 바라보는 바다가 모두 다름을, 안개 낀 듯 흐릿하던 어제까지의 내 마산앞바다와, 앞으로 내가 보게 될 마산앞바다가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지금 내 주위에 선 모든 사람들을 언젠가 꼭 이와 같이 물속에서 마주하게 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고작 열한 살짜리의 깨달음이었지만, 그 십일 년은 당시 나의 평생이었다.

나는 해변에 기둥처럼 늘어선 다리 사이를 빠져나와 집으로 달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해가 저물고 소란이 잦아들고 부모님이 잠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까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

그 애는 나를 좋아했다. ‘사랑하고 헤어진 다음에 되짚어 생각해 보았더니…’로 시작하는 어른의 회고가 아니다. 당시에도 또렷이 알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애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 애의 마음은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된장독에서 배어 나오는 냄새 같았다. 막연한 동경과 절실한 애정과 불가해한 욕망이 서툴게 여민 사춘기라는 뚜껑 사이로 새어나왔고, 나는 여름 불볕 아래를 앵앵대며 날아다니는 파리처럼 반응했다. 나와 같은 몸이 궁금했다. 살과 살이 맞닿는 느낌을 알고 싶었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듯한 기분 좋은 감각에 푹 잠겼다. 햇살은 뜨거웠고 우리는 열다섯 살이었다. 사회의 일반을 이해할 만큼은 자랐으되, 금기에 매료될 수 있을 만큼은 어렸을 때였다.


“아야, 현아야, 뉴스 봤나?”

우산의 물기를 털며 들어서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무슨 뉴스요? 비 엄청 오네요.”

“마, 마산에 태풍이 와서 난리도 아니드라. 우리 오피스텔 주차장도 잠깃고, 사람들도 꽤 다칫다카는 거 같더라. 비가 그리 많이 와서 우짜노.”

나는 우산을 펼쳐 베란다에 널고, 어깨가 젖은 카디건을 벗어 건조대에 걸었다.

“거기 주차장 잠길 만큼 비가 왔다고요? 여기가 허리케인 오는 데도 아닌데 웬일이래요.”

“그러게 말이다. 뉴스 보고 정화네 전화했는데, 안 받는다. 지금 전화가 불통인 데가 많다카네.”

주전자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주택 지붕 꼭지와 자동차 천정이 동동 떠다니고, 전봇대들이 울타리처럼 삐쭉하게 솟아 있었다. 불투명한 진흙색 물로 가득 찬 도시는 마산 아닌 다른 어디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무표정했다. 폭우가 쏟아진 데다 파도가 높게 일어 바닷물이 도심까지 들어왔단다. 화면 상단에 ‘제24호 태풍 속보’ 표시가 빙글빙글 돌았다. 하단에는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사망 2 실종 7’ 글씨가 지나갔다. 나는 텔레비전에 등을 돌리고, 베란다 창가에 서서 빗방울이 투신하는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현아언니?”

“응. 무슨 일이야?”

“에, 언니 너무해요. 꼭 일 있어야 전화하나.”

“지원아.”

“어휴, 알았어요. 그, 왜, 며칠 전에 언니가 보고 싶다고 했던 좀비 영화 있잖아요. 좋아하는 배우들 나온다고… 같이 보러 가자고 전화했어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지금 말고, 다음 주말쯤에요. 비는 목요일 되면 그친다더라고요. 토요일 저녁 괜찮으세요?”

“…….”

“저기, 언니, 저와 둘이 가기 싫어서 그러시면, 음, 어차피 이달 말에 학회모임 하잖아요. 이달엔 영화 보러 가는 걸로 해서 혜선이나 운호나… 새내기들도 다 불러서 같이 가도 되고요.”

“…….”

“어차피 새내기들도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해서 좀 친해질 때 됐으니까, 재국이 같은 애들은 입회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기도 하고….”

“커뮤니티에 공지사항으로 올려서 물어보면 되겠네.”

“언니! 언니, 그러니까 제 말은, 저는 언니와 둘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언니가 싫으면 학회모임으로라도 갔으면 해서 그래요. 어, 언니랑 꼭 영화 보고 싶어서요.”

“아직 일정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거든. 모레쯤 얘기하자.”

“현아언니, 제 말은…”

“아, 물 끓는다. 차 타려던 참이었거든. 다음에 봐.”

나는 지원이 더 말을 꺼낼까 싶어 재빨리 플랩을 닫았다. 그리고 찬장에서 인스턴트커피를 꺼내다 말고,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어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지원은 과 내 학회 후배였다. 오가며 몇 번 보았지만 실제로 인사를 나눈 것은 2학년 2학기 말이었다. 옆자리에 앉았기에 “1학년이지? 지현이던가?” 라고 묻자, 지원은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었다. “지현이 아니라 지원이에요. 강지원.” 나는 어색하게 웃고, 예전부터 그 아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빗소리가 창을 세게 때렸다. 림보의 바닷물은 다른 바다와 마찬가지이다. 바닷물이 도심으로 들어왔다 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발치에 떠다니는 사람 얼굴을 보는 일은 없다. 림보의 물을 떠 수조에 담은 들 그리운 이의 얼굴이 수조에 담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림보의 물을 퍼 가는 사람들이 꼭 한둘씩 있었다. 밤에 몰래 흙을 퍼내다 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림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바닷물이나 망인들이 아니라 그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산에 축구경기장이 세워진 것도, 아시안 게임을 굳이 마산에서 연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도 비가 많이 오거나 파도가 좀 높게 이는 날이면 도시는 뒤숭숭해졌다. 지금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창문을 여며 닫고 커튼을 치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겠지.

*.

“우리가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에 함께 교문을 나선다. 가을바람에 날린 가벼운 빗방울이 그 애의 얼굴을 적신다. 그 애가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애의 안경을 벗긴다.

“왜 그래.”

“젖었네. 닦아 줄게.”

내가 주머니에 구겨 넣고 다니는 안경닦이를 꺼낸다. 가벼운 한숨소리. 팔에 와 닿는 온기.

“내 눈이 얼마나 나쁜지 알잖아.”

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안경알에 튄 물방울을 하나하나 꼼꼼히 털어 내며 묻는다.

“좀비라니?”

“살아 있는 시체들 말이야.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는 림보에 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시체가 아닌가 하는…. 이런 말 하면 혼나겠지.”

먼지 하나 앉지 않은 안경을 그 애의 손에 도로 쥐여 준다.

“좀비는 따뜻하지 않잖아.”

내 팔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진다. 높고 어색한 웃음소리. 그리고 뺨에서부터 온몸으로 천천히 퍼져 나가는 불안한 온기.

소식을 접한 것은 목요일 오전, 번잡한 지하철 안에서 가방을 끌어안은 채 곁눈으로 읽고 있던, 앞에 앉은 사람이 든 지하철 무가지에서였다. 신문 1면은 하나같이 마산 태풍 이야기였다. 비가 많이 오긴 해도 그리 파도가 높게 이는 지역은 아니었기에, 대비가 잘 되지 않아 피해가 무척 컸다고 야단들이었다. 몇 십 년만의 최고 강우량이었다. 도심까지 들어왔던 바닷물은 꽤 빠져나갔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집계가 안 되고 있단다.

그중에서도 신마산 댓거리에서 일어난 사고가 목요일 오전의 톱뉴스였다. 상가건물 지하에 물이 찼는데, 부서진 가구로 입구가 막히는 바람에 사람들이 제때 탈출하지 못해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사상자 대부분은 물건을 옮기러 들어갔던 젊은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시신을 끄집어내고는 있으나 입구가 하도 단단히 막혀 애를 먹고 있단다. 앞에 앉은 사람이 신문을 조금 위로 들어올렸다. 신문 하단부에 있던 낯익은 동시에 낯선 침침한 지하상가의 사진과, 그 옆에 쓰인 사상자 명단이 눈에 들어왔다.

김은영(24) 김주선(22) 김형진(25)……

김은영(24)? 나는 휙 지나쳐 읽다 말고 몸을 기울여 사상자 명단을 다시 읽었다. 김은영(24).
가방을 쥐고 있던 손에서 순간 힘이 풀렸다. 김은영. 흔한 이름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만도 셋이나 있었다. 성을 붙여도 구분이 되지 않아 작은 은영이니 큰 은영이니 하고 나눴었다. 거기에 이은영이나 최은영까지 합하면 마산 시내에만도 비슷비슷한 또래의 은영이 열 명도 넘을 터였다. 스무 명이 넘을지도 몰랐다. 나는 상자 뚜껑을 옭아맨 밧줄이라도 되는 양 가방을 꽉 움켜쥐었다. 흐릿한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좋아해. 정말이야. 손. 팔. 같은 반이면 좋겠다. 어깨. 입술. 우리 이상해. 왜 그래. 너네 진짜 친하다. 왜 이렇게 늦게 집에 들어오니. 온기. 좀비는 따뜻하지 않아. 네가 제일 처음 본 사람은 누구였어. 언젠가는 우리도 바다 속에서 만나게 될까. 뺨. 턱. 가슴.

애써 잊어,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감정의 잔여물만이 남아 더 두려운 지난 이야기들. 부대껴선 사람들의 체열에 숨이 막혔다.

학교 앞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강의실로 정신없이 뛰어들어갔다. 아직 텅 빈 강의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몇 분 앉아 있다 보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땀이 식자 선득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전공 책을 꺼내고, 평소엔 하지도 않던 예습을 하겠다며 애써 책 구절에 정신을 모았다. 다른 학생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선생님이 들어오고, 출석을 부르고, 수업을 했다. 한 시간이 백 년처럼 지나갔다. 나는 점심시간에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시끄러운 식당 곳곳에서 사고 이야기가 들려 왔다.

“젊은 사람들이 많던데 안 되었더라.” “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데 알바생을 지하층에 들여보내다니 제정신이래?” “어디 그럴 줄 알았겠어.” “하여튼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다니까.” “그 앞에 있다는 림보 본 적 있어?” “징그럽겠다. 이제 그 부모들은 어떻게 산대.” ……

나는 반도 비우지 못한 식판을 내어 놓고 가방을 들었다.

“언니, 현아언니!”

식당 저편에서 누군가 급히 걸어왔다. 걷는 모습만 보아도 누군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지원이었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언니, 그, 저번에 말한 토요일 영화 여쭤보려고요. 새내기들은 운호 빼고 다 간대요. 어제 과방에도 안 오셔서, 지나는 길에 보고.”

나는 눈높이보다 살짝 위에 있는 지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교내 동성애자 인권동아리의 일원이기도 한 지원은 일 학년 때 비공식 교지에 네 컷 만화를 몇 편 실었다.

딸이 엄마 눈치를 보면서 반찬을 집다가 말한다. 엄마, 요새 남자가 남자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 좋아하는 사람들 있다고들 하잖아. 어떻게 생각해? 엄마가 밥상머리에서 무슨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딸을 쳐다본다. 정신병자지. 굵은 볼펜으로 그린 듯한 엄마의 눈, 눈썹. 입가에 닿지 않는 젓가락과 허공에서 만나지 않는 시선들. 직접 겪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을, 찰나의 은밀하고 아득한 좌절감.

만화를 그린 사람이 과 후배라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저기 쟤 있지, 동성연애, 아니, 동성애자래.”

대형 강의실에서 내 옆구리를 꾹 찌르고 대단한 비밀인 양 소곤거리며 가르쳐 준 동기 덕분이었다.

“커밍아웃하다니, 대단하지 않아? 고등학생 때부터 무슨 활동도 했다더라. 뭐, 내가 편견을 갖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 반 아니라서 다행인 것 같아. 괜히 다른 사람들이 거북해지잖아.”

앞에서 두 번째 줄, 긴 머리를 고등학생처럼 하나로 묶은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두 학기, 그래. 나는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지원을 알고 있었다. 이름도, 난시 때문에 안경을 쓰면서도 늘 앞에서 두세 번째 자리에 앉는다는 것도, 답답하면 무심코 어깨를 들썩인다는 것도, 기분이 좋을 때면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받을까 봐’ 지원을 조금 피한다는 것도. 나는 지원을 볼 때마다 마산앞바다와 아릿한 열기, 그리고 내가 그때도 지금도 갖지 못한 용기를 떠올렸다.

“응, 어제 오늘 계속 바빠서. 영화를 보러 가기도 힘들 것 같아.”

나는 건성으로 답하며 손바닥에 배어 나온 식은땀을 닦았다. 머릿속으로 너울이 지고 해일이 일었다.

“언니, 혹시 제가 저번에 한 말 때문에 그러시면….”

지원은 한 달쯤 전에 내게 좋아한다고 했다. 바보스럽게도, 나는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지원 앞에서 어떻게 알았어, 하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따지지도 어이없다는 듯이 흘려 넘기지도 못했다. 마치 양치질을 한 다음에 몰래 물고 있던 사탕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되물었었다. 어떻게 알았어. 지원은 안도한 듯 웃었지만, 내가 들킨 마음까지 알지는 못했던 듯했다.

“그건 생각해 보겠다고 했잖아!”

나는 언성을 높였다가,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 재빨리 입을 꽉 다물었다.

“언니, 어디 편찮으세요?”

지원이 놀란 듯 주춤 물러섰다. 현기증이 일며 시야에 물꽃이 피듯 얼룩이 졌다.

나는 유년기를 마산앞바다에 버리고 상경했다. 부산 외가에 갈 때도, 버스로 사오십 분 거리인 마산에는 갈 생각을 않았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모두 끊었다. 그나마 연락하는 두엇은 서울로 올라와 대학서 다시 만난 친구들이었다. 지금 돌아가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확인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졸업앨범을 뒤져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니, 아니야. 소리 질러서 미안해. 나 먼저 갈게. 아마 내일 학교에 안 올 것 같으니까 학회 애들에겐 네가 연락하렴.”


금요일 정오 즈음, 나는 마산역에 내렸다. 하늘이 파랗게 개었고 햇살이 뜨거웠다. 시내는 아직 흙투성이였고 트럭이 곳곳을 오갔으나, 림보는 입장 가능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어렸을 적엔 곳곳에 개구멍이 있는 허술한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던 림보는 이제 키를 넘는 높이의 시멘트벽으로 꽉 막혀 보이지 않았다. 활짝 웃는 어린아이, 자라와 구름, 사물놀이 장면 등이 두서없이 그려진 벽화가 해안선을 둘러치고 있었다. 그려진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으나 군데군데 페인트가 떨어진 품이, 이번 태풍을 맞아 상한 듯했다.

벽화 앞에 세워진 빨간 표지판을 따라 예전에 살던 아파트 뒷길을 지났다. ‘매표소’라고 쓰인 파란색 부스가 나왔다. 입장료와 안내판도 붙어 있었다. 어린이 입장 금지, 청소년(만 24세 미만) 2000원, 성인 3000원, 군인 및 단체(20인 이상) 할인 2500원. 입장 시간 오전 7:00 - 오후 5:30. 음식물 반입 금지, 휴대폰은 진동으로.

“어른 하나요.”

창구에 머리와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함께 들이밀었다.

“네, 여기 이천 원이요. 처음 오싯나요?”

“…… 네.”

“그러면 예 안내문 있으니 읽어 보세요.”

나는 표와 함께 나온 팸플릿을 건성으로 집어들었다.

“고맙습니다.”

“아, 잠깐만요. 게 서 보이소. 혹시 가포여중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요?”

“아야, 니 요 앞에 아파트 살던 현아 맞재? 하이고, 이게 얼마 만이고. 나 모르겠나. 주희 아이가, 주희. 이 년이나 같은 반 했는데 기억 안 나나.”

나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매표소 아가씨의 얼굴과, 그 가슴께에 달린 ‘김주희’라는 이름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주희.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수다스런 아이였지.

“아, 알지. 이게 얼마 만이야. 반가워.”

“그러게 말이다. 니도 참, 전학 갈 때 말도 안 하고 가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나. 여긴 웬일이고. 태풍 때문에 온 거면 안에 들어갈 필요 없을 텐데. 오늘은 저 안에 들어간 사람이 거의 없다카이.”

“평소엔 많이 와?”

“뭐, 수학여행 이런 거 오면 시끄럽재. 오늘은 입장객이 거의 없어서 그냥 마 심심-하게 앉아 있다. 니는 예까지 웬일이고.”

“그냥…. 저기 우리 오피스텔 주차장에 물 찼다고 해서 확인차 왔어. 사고 많이 났다니까 걱정도 되더라.”

나는 입 밖으로 나오는 대로 거짓말을 주워섬겼다. 거짓말에는 묘하게 익숙했다. 주희는 내가 정말 반가운지 아예 매표소 곁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그래, 그래. 말도 아이게 난리였다. 니는 진짜 서울 아가씨 다 됐네. 와, 저기 댓거리에 사고 난 거 니도 안 봤나. 내 친구의 남자친구도 - 아, 니 월영고 다니던 경재라고 아나? 같은 초등학교 나왔을 걸. 모르나? 어쨌든 갸가, 원래 거기서 일하는데 그날은 비 많이 와서 무섭다고 땡땡이 쳐서 살았다 아이가. 천만다행이지.”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래, 주희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갔었다.

“응. 나도 신문에서 봤어. 저기, 다친 사람들 이름도 봤는데, 너 혹시 은영이 기억해? 우리랑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어느 은영이?”

“김은영이라고, 나하고 친했던….”

“아? 니랑 꼭 붙어 다니던 애? 야, 갸는 김은영이가 아니라 김은경이 아이가. 니 진짜 너무하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더니 이름도 다 까묵고. 내가 말한 경재랑 사귀는 친구가 그 은경이다, 은경이. 니 그러고 보니 갸랑 짝지 한다고 나한테 자리 바꿔 달라 카고 그랬지. 안 그래도 너 전학 갈 때 아무 말 안 하고 갔다고 은경이가 말은 안 해도 무지 서운해 했다. 니 편지도 안 썼다 아이가.

은경이 갸는 여기 여기, 여 앞에 경남대 해양학과 가서, 저기 돝섬에서 실습한다. 내가 여기서 알바해서 요새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본다. 너 왔다고 하면 좋아할낀데. 참, 그림 은경이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모르나? 와, 시청에서 일 하셨잖나. 우리 고 2때 돝섬에 점검 나갔다가 돌아가셔가꼬 그때 말도 아니었다. 은경이 어머니는 이사 간다고 난리고……. 그래도 은경이가 예서 대학 다니고 싶다 캐갖고 멀리 안 가고 창원 갔다카이. 오늘은 태풍 때문에 배 못 띄웠지만 내일이나 모레 되면 또 나올 걸. 예까지 왔으니 한번 보고 가지. 좋다 할 걸.”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은경. 은영. 은경. 은영. 나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봉하고 있었던 걸까. 망각에 얼마나 도취되어 있었던 걸까. 주희가 당장이라도 전화를 할 듯 휴대폰을 꺼내자, 물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아니, 괜찮아. 어차피 오늘 오후에 도로 올라갈지도 모르거든. 오랜만에 보니까 진짜 반갑다, 얘. 좀 있다가 얘기하자.”

나는 몸속에서 기름을 쥐어짜듯 인사를 쥐어짜내고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안벽에 기대서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눈을 뜨면 그 앞에는 철조망과 바다가 있으리라.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나는 헐떡이며, 눈을 감은 채 울듯이 웃기 시작했다. 배를 잡고 주저앉아 피를 토하듯 웃음을 토해냈다. 목이 아파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자, 눈물을 닦고 일어나 철조망 사이로 어른거리는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진흙탕 위로 둥둥 떠오른 흐릿하고 또렷한 얼굴들을, 이제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 차가운 얼굴들을 세어 보았다. 언젠가 어디선가 만났던 누구인지 모를 그 많은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들을 감싸고 있는 물비늘 같은 기억들. 그리고 마치 마산앞바다 속에 있는 양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아직 따뜻한 얼굴들. 잘못 난 사랑니를 뺄 때의 개운함과는 다른, 딱지가 떨어지고 남은 희미한 흉터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안도감이 나를 채웠다.

나는 휴대폰의 전원을 켜고 오래전부터 외우고 있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언니!”

“지원아, 너 나 좋아한다고 했지?”

나는 시선을 바다에 못 박은 채 묻고, 지원이 입을 열기 전에 재빨리 덧붙였다.

“그래. 한 번 사귀어 보자.”

“언니.”

참 후, 주저하듯 덧붙이는 말.

“괜찮아요? 언니 나랑 사귀면 완전 아웃팅인데. 그런 거 엄청 신경 썼잖아요.”

나는 지원의 말에 답하는 대신,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지원아, 너 림보를 본 적이 있니?”

“…… 림보요? 아뇨.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긴 했는데, 거기 무슨 전시관 같은 것만 단체 관람하고 바다는 보고 싶은 사람만 봤거든요. 저는 차에서 자느라 안 갔었어요.”

“그렇구나. 저기, 우리, 잘 안 될지도 모르잖아.”

“언니!”

“아니, 만약에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만약에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어도, 정말 상처받아도, 어느 한 쪽이 죽으면 남은 사람은 평생 림보에서 그 사람을 보아야 하잖아? 선명하게. 나쁜 기억이라도, 평생 그때 그 모습을 보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무섭지 않니?”

지원이 잠시 생각하듯 숨을 들이쉬더니, 나지막이 웃었다.

“그런 걱정을 한다면 이미 늦은 것 아닐까요? 무서워해도 소용없잖아요.”

아아, 그렇구나.

피식 웃자 삭은 밧줄이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괜찮아요?”

지원이 다시 물었다. 나는 바다를 똑바로 바라보며, 쉰 목을 가다듬고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말했다.

“응. 이제 괜찮아. 오래 끌어서 미안해.”

그리고 무릎을 몇 번 굽혔다 펴고 거울을 꺼내 들여다 본 다음, 나는 시멘트 벽 밖으로, 밖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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