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 (인문대 교수·국어국문학과)

문학비평은 언어로 이뤄진 독특한 예술 형태인 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지적인 글쓰기와 구별된다. 문학 작품은 그 본래적인 성질 자체가 이미 스스로의 범주를 규정하는 독특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학에 대한 비평적 논의는 어떤 경우이든지 언어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상상적 산물이라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의 존재 의미는 전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규정된다.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사회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학비평이란 문학이 그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 긴요하게 요구되는 하나의 인식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문학비평이라는 말 속에는 문학에 대한 ‘판단’과 ‘식별’의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문학을 문학의 자리에 온전히 남아있게 하기 위하여, 문학 비평은 우선적으로 판단의 의미보다 식별의 의미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다. 최고의 문학비평은 문학의 내용이나 의미에 대한 판단에 의해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데에서 성립될 수 있다. 문학비평이 의도하는 것은 문학을 다른 어떤 사상으로 대치시켜 놓는 일이 아니라, 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존재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속성들을 밝혀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은 모두가 소설에 대한 독후감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비평적 글쓰기 자체의 미숙이지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평정신의 치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 왜 프랑소와즈 사강을 논해야 하고 왜 올더스 학슬리를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설득력있게 제시해야 하며,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비평적 논리와 그 형태도 중요하다. 비평은 자기 논리를 중시하지만, 자기 중심적이어서는 안 된다. 비평이 수필과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 분발하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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